누구나 한 번쯤은 세계 일주를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설가 쥘 베른이 쓴 ‘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 주인공 포그가 80일 안에 세계 일주가 가능한지를 놓고 내기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80일 만에 간신히 도착해 내기에서 승리하는데, 지금은 60시간이면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것은 시속 700㎞로 비행하는 비행기 덕분으로 인류 역사상 손에 꼽히는 획기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1903년 12월 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해안가에서 윌버와 오빌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가 260여 미터를 59초 동안 날아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그동안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비행하는 글라이더나 열기구를 이용한 비행은 있었지만, 동력 기계에 사람이 직접 타고 비행을 한 것은 이때가 세계 최초였다.
윌버 라이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로 진학할 계획이었지만 1885년 얼굴을 심하게 다쳐 힘든 시간이 이어지면서 고등학교 졸업장은 받지 못했고 원래 계획했던 대학교 진학의 꿈은 포기하게 된다. 19세기는 자전거 붐이 일던 시기였기 때문에 1892년 라이트 형제는 함께 자전거 수리점을 열었다. 제대로 된 엔지니어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고 배울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어릴 적 직접 썰매도 만들 만큼 손재주가 있었고 무엇보다 기술에 대한 호기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자전거 수리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디자인한 자전거를 판매하기도 했다. 1891년 처음으로 사람이 탈 수 있는 글라이더를 개발해 행글라이더 시대를 연 독일의 항공 과학자 오토 릴리엔탈의 비행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동력이 없는 비행체였기에 오랜 시간 비행할 수도 없었고 기상 상황에 바로 대처하기도 쉽지 않았다. 비행기에 관심을 가졌던 라이트 형제는 오토 릴리엔탈의 저서를 탐독하면서 연구하던 중 그가 1896년 글라이더를 타다 추락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후 본격적으로 비행 실험에 착수하게 된다. 오토 릴리엔탈이 만든 글라이더에 안전장치와 가솔린 기관을 기체에 추가 장착한 비행기를 완성하였다.
동시대에 비행기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사람은 라이트 형제만 있었던 건 아니며 경쟁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새뮤얼 랭글리로 당시 가장 명성이 뛰어난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중 한 사람으로 피츠버그대학의 물리학과 교수와 워싱턴 스미스소니언협회 회장이라는 명망 높은 직책을 가지고 미국 국방성의 든든한 지원 속에 비행기를 개발했다. 1896년 그가 세계 최초로 무인 동력기 개발에 성공하자 사람들은 그가 인류가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해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랭글리는 비행기 개발을 위해 17년 동안 300명의 인력을 동원했고 그동안 그에게 지원된 돈은 무려 7만 달러에 달했지만, 사람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903년 12월 8일 새뮤얼 랭글리가 만든 비행기 애어로드롬(Aerodrome)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강물로 추락했고 뉴욕타임스는 ‘하늘을 날려면 앞으로 천 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9일 후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비행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전거포를 운영하고 있던 무명 발명가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던 당대 최고의 과학자팀을 이기고 세계 최초의 비행에 성공하게 되었을까?
그 원인으로 많은 것이 거론되지만 사이먼 시넥의 저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Start with why)’에서 비행기 하면 라이트 형제만 기억하는 이유에 대해 정부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주는 사람은 없고, 고위층 인맥도 없었던 그들에겐 하늘을 나는 인간의 꿈이 먼저였고 그것이 그들의 왜(why)였으며 오래도록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라이트 형제는 그저 비행하는 것 자체에 꿈을 갖고 시도를 하였던 것에 반해, 랭글리는 명예욕과 유명세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부를 거머쥘 생각으로 비행에 도전했다고 한다. 라이트 형제는 특별한 꿈이 있었고 비행기 발명이 중요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늘을 나는 법만 알아내면 세상이 바뀌리라 믿었고 이 신념을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과 팀을 만들었다. 그런 ‘왜’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라이트 형제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끊임없이 재시도하여 결국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이라는 쾌거를 이룬 반면, 랭글리는 시도만 하다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말았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에 성공한 후 랭글리는 도전을 접었다는 것이다. 랭글리의 목적은 도전 자체가 아니라 오로지 최초동력 비행 성공과 그에 따르는 부수적인 이익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랭글리가 먼저 성공을 했을지라도 라이트 형제는 자신들만의 꿈을 위해 더 나은 비행을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대개 일을 시작할 때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왜’ 해야 하는지의 순서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왜’가 아닌 ‘무엇’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의 뇌 구조가 그래왔기에 이런 방법이 익숙하다. 그러나 사이먼 시넥은 ‘왜’는 신념이고 사명이며 ‘어떻게’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며 ‘무엇’은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일을 할 때 왜 하는지가 더 중요하지 무엇을 하느냐는 2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왜’라는 것이 먼저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왜’에 집중하면 근본적으로 일을 하는 이유와 의미를 이해하고 강력한 동기와 열정을 가질 수 있다.
‘왜’를 묻는 행위는 자신이 하는 일에 차별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의미이다. 치과의사인 우리는 환자를 진료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한다. 환자를 진료할 때 단지 무슨 치료를 하는지만 관심을 갖는 것은 곧 ‘무엇’과 ‘어떻게’에 대한 생각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일에 대해 의미를 잃고 결국은 수동적으로 단순히 돈 버는 일에만 관점을 갖게 된다. 우리는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하고 이에 따른 대가로 경제적 이득을 얻지만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환자에게 치료비를 선납 받고 갑자기 폐업한 치과가 있어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우리가 환자를 단지 돈벌이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불법 광고, 과도한 가격 할인, 과잉치료, 먹튀 치과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하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의사 본인의 경제적인 이득보다는 환자를 먼저 생각하고 환자의 구강 건강과 불편함을 줄이는 것이 처음 가졌던 ‘왜’이기 때문이다.
최근 치협이 의료법 위반 치과 신고센터를 운영하여 치과계 자정 작용을 촉진하여 선의의 치과의사를 보호하는 것은 협회 본연의 설립 목적과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환자편에서 진료해야 하는 당위성을 인식시키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치과의사의 자존감과 위상을 높이는 정책 또한 필요하다.
‘왜’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은 개업 철학, 가치관 등의 말로 바꿀 수 있다. 같은 ‘왜’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해석 방식과 실행 방법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게 된다. 애플, 할리-데이비슨, 사우스웨스트항공 같은 기업들이 충성고객을 만들고 성공한 이유는 ‘왜’를 알고 있고, 조직 전체가 그 가치를 공유하고 그 가치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병원을 경영하는 사람은 스스로 ‘왜’에 관한 의미와 가치를 확립하여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명확한 의사결정의 공감대를 형성하면 환자에게 신뢰를 얻고 더 성장하고 긍정적이고 매력적인 병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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