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산,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반계리 은행나무를 둘러보는 것은 하루짜리 늦가을 여행으로는 최상이다.
섬강 중류 오크밸리 좌측 산 정상에 위치한 뮤지엄 산은 안도 타다오의 작품으로 건물과 풍광자체가 예술이다. 관람(체험)후 섬강 하류가 펼쳐놓은 강원도에서는 보기드문 평야지대 문막에 들어선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이 넘은 것으로 그 크기와 자태에 압도 당하여 경외심이 저절로 든다.
섬강이 남한강 본류에 합류되는 부론면에 법천사지(法泉寺址)가 자리 잡고 있다.
현대사회는 고속도로, 철도, 항공노선이 물류의 핵심이나 고려, 조선 시대에는 도로망이 없었기때문에 연안이나 강이 오늘날의 도로 역할을 했다.
원주 법천사지가 위치한 부론은 충청, 강원 지방의 산물이 집중되는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흥원창이 있었던 곳으로 경제적으로 부흥했던 지역이었고 사람이 모이니 정보의 교환이 왕성했던 곳이라서 富論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 법상종 대형사찰인 법천사가 임란때 전소되어 중창되지 못했고 현재는 국가지정유산 사적 법천사지로 관리되고 있다. 무수한 폐사지 가운데 유독 법천사지를 가야하는 이유는 지광국사현묘탑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것은 불탑이고 스님이 입적한 후 사리를 모신 부도는 일반적으로 팔각원형 승탑이나 지광국사탑은 부도지만 부처의 불탑 양식을 딴 사각탑이며 玄妙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그만큼 조각의 기예가 출중하고 장엄하기 때문이다.
1085년경 세워진 지광국사탑의 980년 스토리는 그리 간단치 않다.
탑비(국보 제59호, 뒷면에 1,370의 제자 이름이 기록되어 있음)와 같이 있던 승탑은 1911년 명동에 있던 일본인 가옥의 정원석쯤으로 장식되다가 일본 오사카로 밀반출, 6개월 후 총독부 산하 박물관이 있던 경복궁으로 돌아오고 1951년 전쟁시 12,000조각으로 파괴, 1957년 무분별한 복원, 1990년 국립고궁박물관 전시, 2016~2020년 대전국립문화재 연구소에서 해체 보존, 수리, 2024.10월 법천사 이동, 2024.11.12일 113년 만에 귀향했으며(지진 및 보안을 위해) 탑비와는 떨어진 법천사지 유적 전시관에 전시되었다.
봄이면 소쩍새, 가을이면 까마귀 소리 들으며 민초의 애환, 풍운아들의 모사를 지켜봤고 전란시 폭격의 상흔으로 너덜너덜해졌다가 대수술, 보완, 보존처리 후 유랑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법천사지에 돌아온 것이다.
모든 물질에는 탄생과 소멸이 있듯이 석탑도 그 운명을 달리하지 않지만 유독 지광국사현묘탑에는 잊힐 리 없는 스토리가 있다. 흔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한국사의 대략과 고려시대의 정신세계와 문화가 부조되어 있는 국보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근 현대를 지나며 발전해 온 치과계 유형 유물은 대표적으로 서적과 기구, 기계, 재료 등이 있다. 유수의 대학과 전문 회사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하찮아 보이지만 당시대에는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기자재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했을 것이다. 참고로 치의신보의 전신은 (칫과월보)로 1966년 12월 15일자이며 치무과 부활을 위해 추진위원회 구성, 전문의제도 추진, 이유경 회장 유임소식을 알렸다. 광고는 (기술의 오사다)라는 유닛체어 광고가 실려 있다.
자연과 문화, 역사 지리를 화려하게 혹은 고즈넉하게 느끼고 알고 싶다면 원주가 제격이다. 그 중에 진리가 샘처럼 흐르는 법천사지가 중심이다. 근처 거돈사지를 들르면 좋다. 순서는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