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기 어느 날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치과에 들어섰다. 치과 원장님과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아버지는 원장님을 보자마자 원장님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원장님은 아버지와의 짧은 인사 후에 나를 진찰하셨다.
내 입 안에는 우식이 많았다. 원장님은 하악 대구치 네 개에 아말감을, 상악 대구치와 소구치에는 실런트를 하셨다. 치료 비용은 건강 보험 덕분에 저렴했다. 그 때의 수복물들은 지금까지 건재하다.
그 때는 다들 생활이 어려웠다. 교정 장치는 부끄러워 숨길 물건이 아니라 자랑할 만한 부의 상징이었다.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치과 치료는 서민들에게는 많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건강보험은 대부분의 국민이 가난 시절, 서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부유해지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다니고, 내돈내산 후기라는 말이 유행하는 지금, 건강보험이 변함없이 온 국민이 건강하게 사는 데 지속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건강보험 재정이 건전하지 않다는 말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고, 의사분들 사이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되어 의료민영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이대로는 정부, 환자단체, 의사단체의 충돌을 피할 수 없으며 건강보험은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변해야 하는데 무엇부터 손을 대야할 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 여론 속에서 정부, 환자단체, 의사단체가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 당연한 결말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누구도 운신이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일개 개원의 신분이지만 지면을 통해 제안 한 가지 해본다. 민주주의적 대화와 협의에 거듭 실패를 하고 있을 때에는 인식 부분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말로 다른 그림을 그리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사실, 건강보험은 틀린 명칭이다. 그것은 보험이 아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은 돈을 많이 내고, 소득이 적은 사람은 돈을 적게 내는데 동일한 보장을 받는 제도, 그것이 어찌 보험이겠는가. 건강보험을 통한 의료 공동구매는 명백히 사회주의적인 성격이 내포된 의료 복지 제도이다. 그리고 소득이 많은 사람이 낸 돈이 소득이 적은 사람을 위해 쓰이므로 세금의 성격을 가진다고 봐야 한다. 의사는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게 되는데 원가가 보전되지 않는 수가 수준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부분이건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건강보험제도는 의미가 퇴색하게 된다.
보험이란 말에서 오는 보장의 느낌은, 적은 건강보험료를 내는 사람도 과도한 당당함으로 의료기관에 공공적 역할을 강요하는 모습을 유도하는 것 같다.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감정적인 충돌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질이 있으신 일부 국민들…권력으로 의료계 종사자들로부터 빼앗아 환자들에게 쥐어 준, 치료비에 대한 보장성은 종종 의료계 종사자들의 수고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곤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건강보험의 명칭을 사회건강기금으로 바꾸자. 사회건강기금이 올바른 표현이다. 국민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만들어서 사회 구성원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한다는 의미를 내포해야만 현재 건강보험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온전히 담을 수 있다. 보장성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진 역대 정권의 의료정책은 힘에 의한 일방적인 견인이었다. 결국에는 건강보험재정의 고갈이라는 위기상황이 목전에 오게 되었다.
인식의 문제는 대화와 협의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고, 인식은 명칭이 좌우한다. 건강보험이라는 말로 정부, 국민, 의사가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는데 무슨 대화와 협의가 일어날 수 있을까. 사회건강기금이 담은 협력적, 연합적, 공동체적 의미가 사고방식의 전환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많은 국민들이 이 기금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이 기금을 아끼고 가꾸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된다. 사회건강기금은 치료비의 정부측 부담금으로도 쓰이지만, 코비드19와 같은 전염병을 위시한 질병적 재난의 해결에도 쓰이므로 사회건강기금이라는 명칭은 더욱 그 본연의 의미를 담아내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도 건강보험제도의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 의사들도 이 제도가 잘 가꾸어져 국민건강을 증진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역할이 계속되길 원한다. 단적으로, 건강보험이 사라지고 오만가지의 사보험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고 생각해볼 때 그 혼란이 얼마나 클지, 그 불편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혹시라도 각 의료기관에 그 혼란과 불편의 해결 역할이 돌아간다면 내 치과의 데스크는 누구도 맡고 싶지 않는 자리가 될 것 같다.
나의 유년기에 내 치아를 치료해주신 원장님을 개원 후에 뵈었다. 온화하신 원장님은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며 나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가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던 중에 “일단 치료에 들어가면 돈에 대해서는 잊어버려야 한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를 하다보면 보험이라는 워딩 때문에 적은 치료비를 내고도 과하게 치료를 요구하는 환자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런 상황을 겪으며 상한 나의 마음이 은연중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의사가 선심 쓰고 국가가 생색내는 건강보험이 만든 갈등 양상 속에 더 이상 승자는 없다. 재정이 더 악화되기 전에 인식부터 바꾸고 대화와 협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 많이 내는 사람은 자부심으로, 적게 내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회건강기금을 조성하는 일,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어렵기만 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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