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멀리까지 넓게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
호텔 창밖으로 올려다 보이는 LA의 밤하늘은 우리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야경과 사뭇
다릅니다.
흐릿해 보이는 검푸른 밤하늘, 어두운 바탕위에 별빛보다 많은 비행기 불빛이 여기 저기서
반짝이며 떠다닙니다.
도심 일부를 제외하고는 하늘높이 솟은 고층빌딩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돌아가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겠지요 .
함께 있을 때보다 더욱 커 보이는 당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3주 가까운 시간을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지내다 돌아가면 어떤 얘기를 가장 먼저 꺼내게 될까요?
애리조나주 tucson에서 보낸 2주동안은 쉽게 좁혀지지 않은 시차로 졸음과 현기증이 함께
했습니다. 처음 며칠간의 낯설음과 위축된 소심함으로 예민하던 마음이 조금씩 무뎌가기시작
했습니다.
호텔이나 쇼핑몰 레스토랑 등에서 사람을 만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가면서 식사량이 늘어났습니다.
문화적인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이, 그곳에서 오랜시간 머문다는 것으로 충분하진
않겠지만, 3주가 조금 모자라는 시간동안 내가 느낄 수 있는 극히 제한된 일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꿈의 도시라 불리우는 헐리우드와 사막의 신기루 라스베거스를 보면서 자연의 별빛을
무색케 하는, 10만개 전구가 펼치는 라스베거스의 라이트 벌브쇼를 지켜보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위력을 실감하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광활한 대지와 그랜드 캐년의 장엄함 앞에서 내 조국의 산천과 도시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꿈은 헐리우드 필름이 거쳐가는 길을 따라 세계 도처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
꿈이 열려진 기회와 현실의 가능성인지, 스크린을 밝히는 순간의 현란한 불꽃인지, 무지하고
부족한 나로서는 알기 힘든 일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내안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은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타지에서 고향을 생각하고 나 자신을 오래 응시하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향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거리의 희뿌연 불빛처럼, 아득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무엇 하나 정지되지 않고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서른 해 넘게 살아온 내 삶의 발자취가, 생각의 수면위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 가족들을 비롯, 스승과 선배,
친구, 후배들로부터 넘치는 사랑과 가르침을 받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되돌아 봐야할 날들보다, 짧지 않은 미래를 남겨 두고 있다고 믿기에 눈을 들어 멀리까지
보다 넓게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더 큰 배움을 쌓아가리라 마음먹음이, 자신을 모함한 다른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작은
선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작기만 한 내 모습이 한점으로 보이는 밤입니다.
2000년 4월 LA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