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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수필(778)>
보이는 것만이라도....
최원호(광주 광산구 하남치과의원 원장)

인레이가 목으로 넘어가 버렸을 때도, "아-하고 가만히 계세요. 아직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았군요." 하면서 긴 핀셋으로 살짝 집어내던가 친구네 다섯 살 된 아이가 색연필로 뭔가를 그렸다. 다 그렸는지 내게 다가와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비스듬히 기울여진 사다리 모양 위에 두 개의 동그라미가 놓여 있는 그림이었다. 무슨 그림일까 궁리를 해봐도 모르겠길래 “무엇을 그렸니?"하고 물어봤다. 아이는 씩 웃으며 “응, 계단을 올라가는 옆집 쌍둥이들이야 !" 아! 그랬구나 하면서 비행사가 어린왕자에게 그려줬다는 상자 그림을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장난스런 생각이 떠올랐다. 요즘 투시카메라도 나오고, 혈관을 운행하는 작은 로봇도 개발 중이라던데, 사람 몸도 부속이 다 보이는 전화기나 손목시계 처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를 감싸고 있는 ‘오라’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람마다 제각각인 형형색색의 광채를 감상하는 것도 괜찮겠다. 조금은 침침해진 빛이나 색깔을 보고 환자의 건강 상태를 일별할 수 있을 것이다. 커다란 덩치에 무뚝뚝한 표정의 남자 환자라도 심하게 콩딱거리는 심장을 보면서 안심 시켜줄 방법을 생각해야겠지. 너무나 예민하거나 신경질적인 환자의 이마에는 반짝(뺀질)거리는 표시가 나타나면 미리 대비할 수 있겠지. 무엇보다도 근관치료할 때 파일이 근관내로 들어가는 것이 보이면 좋겠다. 근관장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고, 잔존 치수가 있는지, 병소는 깨끗해지는지 볼 수 있겠지. 이리저리 복잡하게 뻗은 accessory canal들이 보이면 어떻게 할까? 지금까지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면서도 잘 치료 되었으니까 그냥 못 본 척 넘어갈까? 아니면 그냥 두자니 찜찜해서 안 보일 때 보다 더 낑낑거리며 근관확대를 하게 될까? 근관충전을 할 때 넘어가거나 모자라는 일은 절대 없겠다. 그러면 좋겠다. 입이 크게 벌어지지 않는 환자라도 기구만 들어갈 수 있다면 제2대구치를 삭제할 때 옆에서 편안하게 바라보며 할 수 있겠지. 조명 잘 맞추고 뺨이 다치지 않도록 조금 주의하면 되겠지. 그런데 나는 마네킨 실습할 때 잘 했던가? 보철물 끼우고 환자 뒤에서 보면 설측 교합상태도 훤히 볼 수 있어서 교합조정이 쉬워지겠다. 좋겠다! 잇몸 속 깊숙히 치근에 붙은 치석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잘 하면 치근활택술 만으로도 훌륭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데, 치근 사이 사이에 숨어 있는 녀석까지 빡빡 긁어 내면 정말 시원하겠다. ‘이제는 만족스럽군’ 생각하며 부착하려고 톡 쳐낸 인레이가 목으로 넘어가 버렸을 때도, “아-하고 가만히 계세요. 아직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았군요.”하면서 긴 핀셋으로 살짝 집어내던가, “참 빨리도 넘어갔군요. 지금 식도를 지나 위장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내일 아침에는 다른 곳으로 나오겠군요”라고 중계방송 하면서 머리 속으로는 이걸 찾아서 가져오게 할까, 다시 만들까 궁리하는 경우도 있겠지. 턱관절이 아파서 입을 벌리지도 씹지도 못하는 환자들의 관절 속을 들여다 보면 좋겠다. 상처 입고 구겨지거나 접힌 관절원판이 있으면 가늘지만 단단한 바늘 같은 것으로 주위에 상처도 남기지 않고 살짝 펴서 과두위에 얹어 놓을 수도 있겠지. 턱관절과 두개봉합, 척추가 서로 영향을 미쳐 어긋난 경우들이 있다던데, 그것들을 보면서 바로 잡아줄 때는 ‘레고’를 조립하는 기분일까? 교합안정장치를 사용하면 모양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절내 손상은 어떻게 치유되어 가는지 지켜 볼 수 있다면 스트레스 받을 일 없겠다. 끝없이 이어지는 넋두리를 듣던 아내의 한마디. “그렇게 다 보이면 치과의사 않고 다른 일 하겠다.”하긴 그렇기도 하다. 공상 속에서도 노는 물이 결국 치과였구나.... 그런데, 지금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라도 잘 보고 있는가? 근관 속을 들락거리는 파일 끝은 보지 못하더라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과 상자 속의 어린 양은 볼 수도 있을텐데. 어린왕자와 장미가 살고 있다는 소혹성 B612호는 너무 멀어서 안 보인다 하더라도 오아시스를 품고 있는 사막의 아름다움은 볼 수도 있을텐데. 요즘에는 달에 살던 토끼가 계수나무 뽑아들고 어디로 이사 가버렸나봐. 계수나무가 뽑힌 구덩이들만 듬성 듬성 보이니. 내일 집을 나설 때 바라본지 오래된, 눈 시리도록 푸른 하늘 한번 보고 심호흡 한번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