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통해 외국뉴스 접하고 편리한 점 많지만
익명성 이용한 언어폭력·소문확산 피해 우려돼
최근에 이사를 하였다. 새로 지은 아파트라 단지 내에 초고속통신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부터 조르던 두 아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내심 나도
가입하고 싶었던 터라 이참에 컴퓨터까지 새로 구입하기로 하였다.
처음 설치하던 날, 클릭 한번에 화면이 착착 바뀌니 아이들은 물론 아내도 덩달아 감탄을
하였다.
모뎀을 사용하던 때는 엄두도 못 냈던 동영상 화면이 순식간에 다운로드(download)되어
시각장애인이 등장하는 리바이스 청바지 선전에 모두들 배를 잡고 웃었다.
내가 컴퓨터 통신을 처음 해본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개원 후 보험처리를 위해 컴퓨터를 구입하고는 프로그램을 공짜로 받는 재미에 대치컴에
가입을 하였다. 이영식 선생님의 주도로 치과방이 생겼는데 moguri라는 ID를 사용했었다.
적극적인 참여도 없이 가끔 남들이 올려놓은 글을 읽어보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후
치과방이 개편되면서 참여를 안했더니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ID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 분이 쓰고 계신지?
인터넷을 처음 접한 것은 미국에서 공부하던 1995년 말이었다. 통계학 시간의 절반은
컴퓨터를 통한 실습이었다. 과제물이 주어지고 때론 땡시험도 치렀다.
어느 날인가 일찍 실습이 끝나 동료와 과제물을 미리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한국이
월드컵을 유치하려고 한다』고 놀라며 화면을 보여준다. 넷스케이프(Netscape)라는 조그만
글자를 클릭하고 Korea를 입력하니 내 화면에도 한국에 관한 내용이 막 올라온다.
이럴수가….
당장에 신세대 한국 유학생들에게 문의하여 집에 있는 컴퓨터에 설치를 하였다. 학교
컴퓨터에 접속을 하여 인터넷을 이용하니 돈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때 눈을 조금 더 크게
떴으면 치과의사 그만 두고 벤처 사업을 시작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에 돌아올 즈음해서는 아침에 병원으로 출근 준비하면서 인터넷의 한국 방송국 사이트에
접속을 하였다. 현지시간 아침 7시가 한국시간 저녁 9시였기에 TV의 9시 저녁 뉴스를
생방송으로 들을 수 있었다. 요즘처럼 초고속 인터넷이라면 화면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요즘은 인포메일이라는 것에 가입을 해놓으니 매일매일 E-mail로 하루를 웃음으로 시작하게
해주는 유머와 영어 리스닝(listening)자료가 저절로 배달된다.
그것도 공짜로….
또 저작권은 잘 모르지만 학창시절에 즐겨듣던 흘러간 팝송을 MP3로 듣는 재미도 그만이다.
편찮으신 아버님의 수술문제로 미국에 계신 누님과 장시간 전화 통화를 해도 전화비 걱정이
없으니 이것도 놀랄 일이다.
이처럼 편리하고 유용한 인터넷의 확산이 가져오는 부작용도 점점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첫째는 익명성을 이용한 언어의 폭력이다.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요즘은
게시판이라는 곳에도 가끔 접속을 하게 된다. 특히 각 초고속 통신망 회사의 홈페이지에
개설된 게시판은 자기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회사를 비난하는 글로 도배가 되어있다. 대개
속도가 선전하는 수치와 너무 차이가 나며 서비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성토한다.
개중에는 자기이름을 밝히고도 저런 지나친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갈 정도로
상스러운 욕설과 비방이 실리기도 한다.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는 컴퓨터 ID라는 것을
사용하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ID는 자신의 본명만큼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킨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고
이점이 통신상에서 근거 없는 소문이나 비난, 욕설 심지어 포르노물의 유통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가 생각된다.
다음으로는 엄청나게 빠른 전파 속도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이미 O양의 비디오라는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의료계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최근에 컴퓨터 통신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여기저기 올라와 있는 전주 모 병원의 의료
사고에 관한 글을 읽어 보셨을 것이다. 한사람이 글을 올렸지만 그 내용의 진위에 상관없이
분개한 제3의 인물들이 그 글을 다른 여러 사이트에 무차별적으로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동기에게 들은 얘기로는 대형 건물에 입주한 재벌 기업체의 직원들을 주로 진료하던
치과에서 환자와 갈등이 생겼더니 그 기업체의 모든 직원에게 그 치과를 비난하는 E-mail을
보냈다고 한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을 단 몇 분만에 해치울 수 있는 컴퓨터 덕이라고나 할까. 앞으로
이런 일들이 얼마나 자주 생길지 알 수 없지만 늘어나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