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를 받기 위해
아침 6시부터 기다린 분들에게
나의 치료가 큰 도움이 되길…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3일까지 5박6일동안 몽골에서 2003년 하계 해외진료 활동을 벌였다. 이번 진료봉사는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도르노고비도의 도립병원에서 펼쳐졌다.
고비사막의 동쪽 인구 5만 명이 사는 이 지역은 나무 한그루 없고 풀도 잘 자라지 않는 마치 전장터를 방불케하는 열악한 환경의 시골로 유아사망률이 아주 높고 성인병이 아주 많고 특히 치아는 반상치가 많아 대부분 사람들이 전치부가 검붉고 보건의료 혜택이 절실한 곳이다.
우리 열린의사회는 이번 봉사활동을 위해 내과, 소아과,피부과, 치과, 한방분야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와 회원자녀 7명 등 모두 23명의 봉사단이 파견됐고 울란바토르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남녀대학생 15명이 통역을 맡았다. 작년보다 경기가 좋지 않은 영향인지 3분의 1정도 인원의 감소로 봉사단장을 맡은 나로서는 가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의료진 자원봉사자, 학생봉사자, 통역들이 너무 열심히 해서 2500명의 진료를 알차게 끝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진료는 우리 단체의 7번째 몽골 봉사인데 작년까지는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진료를 했는데 이번에는 몽골대사관의 요청으로 아주 오지인 도르노고비에서 진료했다.
7월 29일 작년부터 몽골 봉사에 참여한 고등학생이 된 아들 영균과 비행기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벌써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다. 점심식사는 작년에 우리 병원에서 틀니를 만들어서 끼워드린 앵크볼트 울란바토르 시장 부모님과 자매결연 병원인 항울병원 원장, 보사부차관 등과 같이했다. 식사 후에 역으로 가니 드르노고비 도지사가 마중을 나왔다. 12시간동안 기차를 탔다. 여기 기차는 한 칸에 위아래 네 개의 침대가 있었다. 조금 지저분하지만 낭만이 있었다. 몽골에는 산이 높지 않고 골프장 같이 모든 곳이 잔디이다. 여기에 말과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마음이 확 트인다. 밖의 풍경은 변화가 거의 없고 유사하다. 새벽 2시에 도착하니 병원 원장과 보건국장이 반갑게 맞는다.
7월 30일 8시에 기상해 9시에 병원에 도착하니 수 백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치과는 나와 손홍석 원장, 김말희 우리병원 치위생사, 우리아들 영균과 레슬링국가대표 출신인 유문기 마이팜제약 인사팀장과 통역 3명이 배치됐다. 우리가 만들어온 unit를 연결하고 진료를 10시에 시작했다. 거기에는 26세인 여자치과의사와 간호사 한 분이 있다. 이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배우려 하는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는 발치와 신경치료는 그곳 현지의사에게 맡기고 한국에서 협찬 받아온 3M레진과 덴키스트레진으로 주로 전치부의 충치와 변색치아들 그리고 스켈링 등 하루에 70명 정도 시술했다. 시술 후에는 양치질 교육을 하고 니치치솔에서 제공한 치솔을 주었다. 저녁에는 식사 후에 간단한 토론 후에 모든 단원의 만남의 장을 마련했다.
7월 31일 소아과에서 머리에 농양이 심한 아이를 피부과와 협진해 절개배농을 해 사경을 헤매던 아이를 구출했다. 치과대기실 밖에서는 미리 번호표를 받지 못한 멀리서 온 몇시간을 밖에서 기다린 사람과 접수 보는 통역과 말다툼이 생겨 통역한 학생이 울고 난리다 역시 접수는 요령이 필요하고 힘이든가 보다. 저녁에는 통역들과 노래방에 가서 격려해 주었다.
8월 1일 진료도 많이 익숙해지고 보다 많은 진료를 할 수 있었다. 시커먼 전치부의 충치를 치료해주니 눈물을 글썽이는 그곳 소아과 여의사의 모습이 지금도 나를 기쁘게 한다. 저녁에는 드르노고비의 박물관을 관람했다. 여기지역이 옛날에는 공룡이 살았고 바다였다는 증거도 보인다. 그 후에 본 전통 민속공연은 아주 호탕하고 단징이라는 1800년대 유명한 이곳 사람에 대한 추모가 잘 표현됐다. 저녁에는 사막에 가서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겔에서 우리 자녀들을 추억을 갖게 하고 그곳 의사를 초청해 전통식사인 양고기와 염소고기를 먹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