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9 (목)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955)원조교제 (母情) 이은주원장

옆얼굴은 아직도 애기같다
솜털도 보이고
이제 고등학생이다…다 컸어

 

구정연휴를 끼워 실로 오랜만에 스키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부터, 계속 문자를 주고받았다. 외삼

촌 차를 타고 이모와 함께 우리 차를 따라오면서 신이 나있다. 그렇게도 갖고 싶어하던 휴대폰을 미국에서 온 지 이모가 구정 선물로 사준 것이다. 아빠가 가지고 있지 않는 휴대폰은 그림의 떡처럼 미리포기하고 있던 터이다. 아이들에게 필요없는 것이라 나도 의심치 않아서 그것에 대해서는 나 또한 단호했다. 값도 터무니 없이 비싸서 그것을 사준 이모도 이건 부모가 사줄 것은 못된다 딱 이모가 사주어야 하는 것이다 라고 하며 한국의 휴대폰 시장을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허나 아이는 하루종일 손에 쥐고 들여다 보며 한창 여드름이 나기 시작한 얼굴이 싱글벙글이다.- 아빠가 뭐라하까- 이모가 선물로 사줬다 해라- 그래도 아빠 뭐라할거다 ㅋㅋ-

 

스키장에 도착하자 한 번이라도 더 타야된다며 전투투세인 아빠를 따라 모두 바쁘게 움직여야만 한다. 휴가의 낭만도, 설경의 싱그러움도 없다. 구정에 피곤하여 허리가 심하게 아픈 나는 포기하고, 모두들 헉헉거리며 스키를 신고 리프트를 타러 갔다. 구력(?)이 20년이 넘는 지 이모는 아이에게 있어서 환상이었다. 멋지게 일자로 타는 이모와 상급자 코스를 가는 것 그 자체로 자랑스러워했다. 매운 날씨에 눈이 날리자 여드름 자국자국이 불긋불긋 꽃을 피우듯 피어오르는 유난히 작고 잘생긴(?) 둥근 두상에 모자를 쓰고 이마에 고글을 받친 눈으로 씩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래놓고 문자를 보냈다.-뭐할건데 엄마-


앉을 곳 조차 만들어 놓지 않는 스키장의 횡포로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내려오는 슬로프만 바라보며 눈에 익은 모습들을 찾았다. 그러다 지루해서 문자를 보냈다 -뭐하노 아들아- 한참을 지나서 문자가 왔다 - 엄마 너무 추워서 나혼자만 위에서 타고 아무도 못봤다- 점심은 언제 먹을 건데- 엄마 두번만 더 타고 내려갈까-? 그럴래- 거의 영하 20도라는 그곳 날씨에 조금 후 도착한 우리의 식구들은 모두 남극에서 살아남은 대원들 같았다. 빰이 얼어서 뻘겋고 입술도 부풀어 있었다.

 

단 나의 아이만 두 눈을 반짝이고 큰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전문가인 지 이모도 못타겠다는데? 지만 괜찮단다. 아, 건강한 젊음이여. 다른 사람 머리 하나가 더 큰 몸에 잘도 먹는다. 나 우동하나 더 먹어도 돼? 모두들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서 엄마는 뭐했는데 또 묻는다. 서두르는 아빠를 따라 나서면서.

하늘에 그늘이 지고 또 눈발이 흔날렸다. 나는 몸이 으슬거리고 힘이 빠지고 눈이 감겼다.

 

보다 못한 지 외삼촌이 차에 가서 쉬란다. 이모도 좀 쉬겠다하고 삼촌도 더 못하겠다하고, 아이가 무척 재미없어 할거라 다들 걱정이 됐다. - 엄마 탈때는 전화 못 받아 문자보내.- 무슨 생각을 하며 눈 싸인 슬로프를 타고 내려올까. 혼자서. 새벽에 일어나 테니스를 치러 갈때도, 스쿼시를 하러 갈때도,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항상 궁금했다. 결국 인생을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그 어두움속에서 자기만의 방법과 길을 발견했으면 했다. 나는 오늘처럼 기다려주는 것만 할 수 있을뿐.

 

숙소에 모여 샤워를 했다. 옷을 훌훌 벗어던진 뒷 모습은 눈이 부시다(?). 벌어진 어깨, 긴 다리, 근육이 붙은 허벅지와 종아리. 이모가 니 엄마는 중증이라며 놀린다. 그러면서도 지는 해와 뜨는 해네 하며 또 한번 웃었다. -라면 먹고 싶다-. 다들 눈을 흘기며 째려본다.- 금방 밥 먹었잖아- 컵 라면. 훌훌거리며 국물까지 비우고 조금 뒤에 보니까 벌써 골아떨어졌다. 그래 나는 짝 사랑한다 어쩔래. 대강대강해 눈 꼴시려서 원. 옆얼굴은 아직도 애기같다 솜털도 보이고. 이제 고등학생이다 다컸어. 그래. 그래..

 

꿈속에서 나는 긴 설원을 가르며 신나게 스키를 탔다. 멋진 나의 연인이 옆에서 웃으며 내려온 것은 물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