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환자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하지만 몇 개월 후면
내게 고마워 할 할아버지의 모습을…
어떤 환자1년쯤 전 일이다.
야간진료시간에 중년의 고집이 세게 보이는 딸기코 아저씨가 부인의 손에 이끌려 치과에 왔다. 한눈에도 고집 세고 다른 사람 말 듣지 않게 보이는 분이 어찌하여 부인 손에 이끌려 치과를 왔을까 궁금했는데, 입안 검사를 해 보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풍치와 우식증이 심해 뿌리만 남아있는 치아도 많고 풍치로 흔들리는 치아도 많았다. 중요한 점은 잇솔질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점이었다. 건강보험증을 보니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것으로 보아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인 것 같은데, 술 접대 할 일이 많아서인지 이를 제대로 닦지 않는 것 같았다.
올해로 치과의사가 된지는 18년, 개업한지는 15년이 다 되간다. 오랜 세월 한 장소에서 하다보니 개원 초기에 치료받은 환자들이 가끔 내원하는 경우가 있다. 10년이 넘은 내가 치료해 준 보철물과 치아들이 무사한지 궁금해 현재 내원 한 이유와 상관없이 옛날 보철물과 치아들을 하나 하나 검사하다 보면 정말 나도 놀랄 정도로 깨끗하게 잘 살아남아 있는 것들을 보며, 작은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개중에는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철한 치아가 흔들리고, 뿌리 쪽으로 썩어 들어가 포스트 째 부러져 오는 경우도 많이 있다. 대부분 잇솔질을 잘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잇몸치료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고, 근자에는 환자에 대한 잇솔질 교습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교육을 많이 시키고 있다. 그런데 잇솔질은 습관이라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힘들게 잇몸치료를 하고 나서 몇 달 후에 보면 다시 예전 상태로 돼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 요즘에는 스케일링 후 잇솔질 교육을 하고 다음에 잇솔질 상태를 검사해서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다음 단계 치료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이 환자 분도 뺄니 빼고 충치치료를 끝내고 보철치료에 들어가기 전, 스케일링을 하고 치주소파를 해야 하는데 좀처럼 잇솔질을 하지 않고 그냥 내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잇솔질을 하고 오라고 강조를 했는데도 검사를 해보면, 치아 사이에서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 음식물 찌꺼기들을 보게 됐다.
그래서 검사만 하고 다시 잇솔질 교육을 시키고 되돌려 보내기를 수 차례, 한 동안 내원 하지 않다가 어느 날 부인 손에 끌려 다시 내원했는데, 나도 놀랄 정도로 잇솔질이 완벽하게 된 것이다. 너무 기쁘고 놀라 다음부터 치주소파술을 해 주기로 하고 부인께 설명을 해주니 나로서는 크게 해 준 것도 없는데 부인이 너무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것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틀니까지 만들어 장착해 주고 가끔 검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병원에 온 환자 중 기억에 남는 환자 중 한 분이다.
최근 고집 세게 보이는 할아버지가 내원했다. 아래 앞니가 모두 흔들거려 발치를 하고 임시치아를 해 주었는데 전체적으로 풍치가 심해서 잇몸치료를 하지 않고서는 안되겠기에 스케일링을 하고 잇솔질이 중요하다는 점과 하는 법을 알려 주고 잇솔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음치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고 말씀드렸다.
이 할아버지 또한 잇솔질을 그렇게 강조해도 매번 올 때마다 음식물이 그대로 입안에 남아있어 그냥 돌려보내기를 몇 번, 드디어 어제는 할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우리 병원 직원에게 더럭 화를 내면서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느냐? 배운 사람이 더 하다. 노무현이가 와 치료해 달라고 해도 안해주고 돌려보낼꺼냐?” 하면서 전화를 끊어 버리더라고 한다.
이제 다시 환자와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몇 개월 후에 내게 고마워 할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며, 내일쯤 내가 전화를 다시 한번 드려야겠다.
전용구
86년 서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