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 잘려나가 앙상해진
나무를 보면 왠지
서글픔과 분노가 치밀어 올 때가…
아버님이 공무원 생활을 마치시면서 소일거리라도 있어야겠다고 장만하셨던 감나무 밭에 가지치기를 하러갔다.
예년 같으면 당신이 어머님과 함께 가셔서 다 하시고 오셨을 텐데, 작년 추석 무렵부터 갑자기 노환증세가 심해지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관계로 내가 모시게 가게 됐다. 아버님이 밭을 장만하신지 7~8년정도 돼서인지 감나무들이 제법 튼실하게 자라있었고, 봄기운이 완연히 느껴질 정도로 날은 화사했다.
애초 아버님과 나는 가지치기에 대해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님은 한 나무에 너무 많은 가지가 달려있으면 나무가 곧고 크게 크질 못하고 열매도 부실해 지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한다 하셨다.
반면 나는 모든 생물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 속에서 그들 스스로의 생존방식을 느끼면서 살아야지, 우리 인간이 개입해서 이렇게 저렇게 간섭하는 것은 잘못된 거라 주장하면서, 어차피 우리 감나무 밭에서 나오는 감들을 다 먹지도 못하고 팔지도 않을 건데 그냥 감나무들이 그들 스스로 자라게 내버려두자고 했다.
그러나 나무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갖지 않고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 ‘돼지 목에 진주목거리’ 꼴이 되고 만다는 아버님의 말씀과 권위(?)에 감나무 밭으로 나선 것이다.
밭에 가는 길가에는 제법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펼쳐지고 있었고,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들꽃들은 여기저기서 하나 둘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왠지 황량해 보이던 산과 들판에 봄기운이 조금씩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만의 힘으로, 비록 연약하지만 대지에 뿌리를 내리면서 봄이 시작되고 있음을, 자신들이 살아있음으로 봄을 만들고 있다는 듯이 외치는 것 같다.
인간이 손을 대지 않아도 자신들 스스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리는 듯 싶고, 어찌 보면 우린 그대로 두었을 때 더 잘 살 수 있음을 알리는 듯 싶다.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만 자라난 나는 과수원 일을 비롯해 농사일에는 젬병이다. 따라서 가지치기나 농사일 등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가로수를 전기톱날로 사정없이 쳐내는 것을 볼 때마다 사지가 잘려나가는 느낌을 종종 받기도 하며, 가지가 잘려나가 앙상해진 나무를 보면 왠지 알 수 없는 서글픔과 분노가 치밀어올때가 많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이 가진 미적 잣대(?)에 의해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무는 곧고 크게, 그리고 보기 좋게 자라게 하므로 가지치기를 한다는 것은, 민족의 순수성을 지켜야하고, 열등한 종족은 없애야한다는 히틀러나 기타 종족간 분규지역의 주장 등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닌가?
물론 너무 심한 비약이 아닌가 싶지만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무를 다루는 것과 종족과의 문제를 자신의 종족의 입장에서만 판단하는 것, 이 두 가지 생각은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한편으로 가지치기는 다른 가지를 보호하고 나무 전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가지치기를 종족분규 등 인간의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잘못된 비유일수 있다.
하지만 군데군데 잘려나가 볼품없어진 나무와(아버님은 깨끗해졌다 하셨지만), 돌아오는 길가에 푸른 새싹사이로 빼꼼빼꼼 고개를 들이민 들꽃을 보면서 나 혼자만 느낄지도 모를 생각에 다시 빠져들었다.
손정수
- 90년 전남치대 졸
- 현)광주 광산구 손정수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