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들을 위해
부지런히 싸워가며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보자고…
참 좋은 세상이 온 것 같다. 이유야 어찌 됐던, 또 결과야 어찌되든, 협회장님께서 ‘여치의 정계진출에 대해 산파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오시니 정말 기쁘다.
20년 전 필자가 본과 3학년 때 ‘여학생회’라는 조직이 탄생했었고, 전남대학교 치과대학 여학생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었다. 그 당시 전체 대학내에서도 여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여보자는 바람이 불어 총 여학생회가 처음으로 출범했는데 지금과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여학생 한명만이 참여하는 기존의 총학생회 여학생부에서 독립해, 여학생회라 칭하고 회장을 여학생들끼리 모여 선출했으며, 독립적인 활동과 동시에 학생회와 상호 보완적인 역할분담으로 여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은 학생활동을 해보자고 했던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치과대학 병원에서 수련의를 선발할 때, 여학생들이 공부는 잘하지만 책임감이 없고 남학생들 보다 일도 잘하지 못하고 이기적라(뽑아 높으면 시집가 버린다고)는 이유로, 남녀 성비에도 못 미치는 수를 뽑았었다. 그나마도 교수님들께서 서로 여자 수련의를 안 뽑으려 하셨다.
그 때 필자가 초대 여학생회장으로서 총대를 메고 데모를 해, 교수님들께 많은 미움을 받고 (그때 필자를 미워하셨던(?) 교수님께서 필자를 국회에 보내야 한다고 하셨다) 결국은 남녀 성비율로 2명의 여자 수련의 수를 겨우 확보했었다.
그 당시 학생주임 교수님께서 필자에게 ‘데모를 계속할 경우 수련의로 남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라’고 하셨고 필자는 ‘알았다’고 말씀드리고, 데모를 계속했기 때문에 수련의로 남을 것은 생각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졸업하고 무보수로 배우려 해도 받아주는 병원이 거의 없어 여기저기 다녀보다가 결국은 개원하여, 점심때면 환자 모델을 가지고 학교에 가서, 수련의 선생님들과 교수님들께 여쭈어가며 어렵게 공부를 했었다. 힘들었던 그 당시가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요즈음은 여학생들이라도 수련의 남기가 쉽다고 하고, 여학생들의 참여도가 여러 활동에서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정말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며칠 전 치과 직능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필자가 추천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후 협회로부터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제출하고 원하는 정당을 선택해 알려 달라는 전화를 받고서 얼떨결에 서류를 제출하고 아무 준비도 없이 있었는데 갑자기 등록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서류들을 준비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필자는 사전에 다른 일로 여러 서류를 준비해 놓은 것이 이번 등록서류와 겹치게 돼 일단 등록을 하게 됐으나 다른 유능하신 선배님들께서는 시간부족 등 등의 이유로 등록을 포기하게 됐다. 이번에 한번 겪었으니 다음부터는 적어도 이런 이유로 포기하는 분은 안계시리라 믿는다.
전혀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진행되고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으나 이미 얼떨결에 주사위는 던져졌고 또 주위에서 분위기 조성을 해 주시는 것이 너무도 고마워서 미약하게나마 있는 힘을 다해보리라고 다짐해 본다.
현재 우리 대한치과의사협회는 남자 회원이 1만9천833명, 여자 회원이 4438명이라고 한다. 여자 회원 수가 전체의 1/5이 넘게 된 것이다.
그러나 4438명중 치협내 여자 대의원은 고작 1명에 불과하고, 중앙 및 각 시도지부 협회 내에 부회장은 단 한 명도 없다.
한국의 사회적 관습상 일단 여자들은 집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시되므로, 치과만 끝나면 남는 시간은 일단 공부, 아니면 가정 지키기에 급급한 것이, 여자치과의사들의 현실이다.
·집안에서의 역할이 너무 많이 주어진 탓에 출산 및 육아를 담당하는 시기의 젊은 여자치과의사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자주 집을 비웠다가 자녀가 입시에 실패라도 하게 되면 비난은 온통 여자 몫이기 때문에 중년의 여자치과의사들 또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