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8 (수)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967)C 사범님께… 베트남진료를 떠나며/조기종 원장

C 사범님, 그전쟁당시의 얘기들은

지난 과거로 덮어 버리기엔
너무 안타깝고 참혹한 사건…간 잘 계셨는지요.

 

저번에 틀니 수리 차 다녀가신 게 얼마나 됐는지요? 지금은 별 불편함 없이 잘 사용하고 있으니 연락이 없으시겠지요. 건강은 어떠신지 요즈음도 비만 오면 온몸이 쑤셔와 소주 한잔으로 달래고 계신지요.
고엽제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으로 뻔질나게 보훈병원을 다니시더니 요즈음은 어떠신지요. 항상 비만 오면 술취한 음성으로 전화해 진료약속을 취소하시곤 해서 베트남진료 출발을 앞두고 사범님 근황이 궁금해 이렇게 안부를 묻습니다.


제가 사범님을 처음 만난 게 얼마나 오래 전 일인지 새삼 세어봅니다.
벌써 30년 이상 훌쩍 가버린 세월의 일이군요. 중고등학교 시절 태권도가 국기라는 이름으로 국내 무술계를 통합하기 이전에 산등성이 허름한 창고같은 함석집에서 두꺼운 헝겊을 덮은 맨땅에서 맨발로 시린 발을 참아가며 운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니 말입니다.


고1때인가요 군복을 입고 월남전에서 태권도 교관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자그마한 체구에 날렵한 동작은 얼마나 저를 매료시켰던지요. 무거운 워카발로 샌드백을 서너번 발길질하는 강력함, 처마끝까지 작은 키로 뛰어 오르던 도약은 참 볼 만 했었지요. 그런 분이 제 앞차기를 칭찬해 주셨을 때 어린 마음에 좀 우쭐해하기도 했었지요.


그때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을 아직도 만나고 있는 걸 잘 아시죠. 그 모임 이름은 오수회인지도 아시는지요. 55년생 수정동 출신 그래서 오수회라고 정했답니다. 물론 사범님 제자가 아닌 친구들도 있지요. 서로 친한 놈을 끼워주다 보니 그리 됐지요. 하지만 얘들이 2달에 한번씩 만나지만 굉장히 편안하고 좋은 친구들입니다. 사범님이 잘 아는 친구들은 모 은행 노조위원장 지냈던 40에 절로 출가해 버린 L, 소아마비로 한다리를 심하게 절면서도 열심히 수련했고 지금은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제과점에서 빵굽는 K, 처가집 어선단을 경영하다 러시아쪽 수산물 무역하는 J, 이름이 같아 큰놈 작은놈으로 불렸던 두 C-큰놈은 수산대 나와 원양선 타다 생선장수, 작은놈은 농협 연수원에서 일하고 있지요-입니다. 그 외는 잘 모르시는 얘들인데 통닭집하다가 꽃집하는 P, 개인사업하는 K, 대구서 어학원 원장하는 C 등 등 몇 친구들이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학 마치고 치과 열 때까지 근 10년간 이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얼마나 얘들이 살갑게 대해 주는지 세월을 넘어 좋은 만남을 갖고 있지요. 이 만남의 단초는 결국 산동네 당수도장이었지요.


어쨌든 제가 베트남 진료를 앞두고 왠지 사범님께 마음이 가는군요. 몇 년전이던가요. 왠지 어릴때부터 허약했다던 아드님이 저세상으로 먼저 간 날 오수회 얘들과 영안실로 찾아 갔을 때 사범님은 안 계시던군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담담할 이는 없겠지요. 그 경계의 이야기인 월남전에 대해 언젠가 사범님과 한자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사범님이 어떤 시각으로 월남전을 보고 계신가를 알고싶은 마음이지요. 사범님을 만났던 그때보다 좀 이른 시절부터 어린 우리는 위문편지도 때론 썼겠지요. 부두에서 열렸던 국군장병 환송식은 대단히 즐거운 행사이기도 했지요. 옆 학교 여학생 얼굴도 훔쳐보는 짜릿함에 수업까지 하지 않는 날이었지요. 영화관 대한뉴스는 월남전의 승리를 자유대한의 위용으로 뽐내곤 했지요. 당연히 우린 전쟁과 무용담의 세계를 의심없이 수용했던 거지요. 그런데 긴 세월이 지난후 알려지기 시작한 전쟁당시의 얘기들은 지난 과거로 덮어 버리기엔 너무 안타깝고 참혹한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베트남 진료단에 참가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일제하 정신대 문제가 있듯이 해방후 제주도에 4·3이 미군에 의해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듯이 드러나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그 피해당사자들에게 작으나마 위안이 될까 해서이지요. 그곳에 가서 본 밀라이 박물관에 전시된 미군 종군기자의 미군에 의한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