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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 마라톤 출발 선상/ 조문건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이
박수를 쳐 주기도 하지만
대신 달려줄 사람은 없구나


 윤실아!
아빠는 지금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 출발 선상에 서 있단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출발 총소리만을 기다리고 있지.
Entry number 189번.


출전선수 2만1천여명 가운데 189번째 기준기록을 갖고 참가하기 때문에 제일선두 A group에 속하게 돼 이제 곧 제일 먼저 운동장을 빠져나가게 된단다.
제일 후미 group이 운동장을 빠져나가려면 대략 40여분이 소요되리라 예상되는데 아빤 제일 먼저 빠져나가게 되니 어떻게 보면 엄청난 특혜(?)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아빠가 이 엄청난 특혜(?)를 누리기 까지 무려 7년여 세월이 걸렸단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 이르기까지 2~3년만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평생 달려도 A group에 속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아마도 오늘 달리는 사람의 99%는 평생 A group에 속할수가 없을 것이야. 그만큼 힘든 자리이기도 하지.

 

윤실아.
윤실이가 아마도 6~7년후쯤 사회에 첫발을 내딪을 때 쯤 아빠처럼 제일 선두 A group에 속할 수도 있고, 후미 group에 속할 수도 있겠지.
어디에 속할지는 윤실이가 그 동안 지내온 학창시절과 앞으로의 남은 high school 생활, 그리고 대학생활을 얼마나 성실히 보내느냐에 달려 있겠지.


하지만 출발을 빨리 했다고 해서 골인도 빨리 한다는 보장은 없단다.
42.195km의 긴 여정은 너무도 변수가 많은 기나긴 길이기 때문이지.
윤실아.
아빠는 벌써 수십번째 마라톤 출발 선상에 서지만, 출발할때마다 언제나 설레이는 벅찬 감정은 억누를 길 없구나.


어쩌면 앞으로 달려가야 할 까마득한 100리길 (42.195km)을 생각하니 솔직히 설레임 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구나.
잘 달릴수 있을지, 중간에 걷게 되지는 않을지, 아차산 산길을 달리다 입은 발목 부상이 악화되지는 않을지, 특히나 32km 이후 부터의 10km 구간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입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구나.
하지만 아빠는 이번 춘천마라톤을 대비해서 지난 여름 그 뜨거운 햇살과 쏟아지는 장마빗 속에서도 무던히도 달렸단다.


붉은 아침 햇살이 예봉산 자락으로 떠오를때의 미사리 뚝방길, 숨이 턱까지 차올라 차라리 걸어 버릴까 무수히도 유혹을 받았던 그 가파른 검단산 길, 차를 타고 달리면 아름답기 그지 없지만 막상 뛰어보면 왜그리도 고갯길이 많은지 지긋지긋 하기만한 용평 도암댐 순환도로, 이제는 하도 많이 달려 어디에 어떤 나무가 있고 어떤 바위가 있는지 꿈속에서도 그릴 수 있는 아차산 cross-country 길….


이 모든 길들이 이제는 하나같이 포근한 엄마의 품속처럼 와 닿는구나.

윤실아.
윤실아 아빠는 이제 100 여리길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 라고들 하지.
한 걸은 한 걸음 뛰다보면 어느 시점이면 춘천 공설운동장으로 돌아오겠지.
마라톤은 정말 어떻게 보면 진짜 재미 없고, 밋밋한 운동이야. 그래서 마라톤은 흔히들 우리네 인생에 곧잘 비교하곤 하지.


요행을 바랄수도 없고, 너무나 정직한 운동이란다.
그런데 윤실아!
마라톤 풀코스를 뛴다는 것이 너무 힘들구나. 윤실이의 학업과 유학 생활도 이렇겠지. 아니 더 힘들거야.


하지만 이 아빠는 윤실이가 힘들어 할때 편히 쉬어 가라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제대로 못했구나. 그러나 어쩌겠니. 어느 누구도 아빠대신 뛰어줄 사람이 없는걸.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이 박수를 쳐 주기도 하지만 대신 달려줄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구나.
그저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어 끝까지 달릴 뿐이지.


어느새 저 멀리 가족들의 함성으로 가득찬 춘천 공설운동장이 보이는구나.
이젠 두다리가 물먹은 솜 뭉치가 돼 허공을 헤매이는 기분이구나.
그래도 이 아빠는 힘들었어도, 정말 걷고 싶었어도, 수십번 포기하고 싶었어도, 윤실이가 외국에서 그 힘든 유학 생활을 이겨나가는 것을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