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가 자칫 잘못하면
의사라는 고상한 신분에서
기능공으로 추락하기 쉽다
치과의사가 된지도 30여년이 훨씬 지난것 같다. 한가한 시간이면 혼자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 발치한 치아를 전부 모아 놓으면 얼마나 될까. 또 크라운과 크라운 브릿찌를 전부 연결해 놓으면 과연 얼마나 긴 다리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런걸 자꾸 생각하면 재미있는 공상이 되고 지난날 인상 깊었던 병원에서의 일상 생활이 추억처럼 스쳐가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이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인것이 발치라고 생각한다.
한때 수평지치나 매복치를 젊음의 오기로 치과의사된 오기로 달려 들었다가 1시간 2시간 고전을 면치 못했던 지난날의 추억을 생각하면 그때 묵묵히 참으며 눈물 흘리고 고생했던 그 여자 환자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30여년 내가 만든 크리운 브릿찌가 성수대교처럼 부실 공사는 아니었던가.. 일정한 공기(工期)를 무시하고 급속히 건설한 교량처럼 무리한 크라운 브릿찌도 있었을 것이다.
든든하지 못한 지대치를 이용했거나 발치와가 들 굳은 상태에서 시술한 보철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이것은 어느 시기까지 얼마의 예산으로 완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무리한 공사를 하다보면 더 큰 재난을 당하는 국가 교량, 도로, 항만 건설과 같은 우매한 짓을 저지른 것보다 더 큰일인 것이다.
우리들의 구강내에서 시술하는 모든 행위는 그야말로 이것보다 몇백배 사전계획(치료계획)과 진단, 예후, 써베이(기초조사)를 걸쳐서 이뤄질 끊임없는 주의와 긴장이 연속되는 작업일 것이다.
예를 들어 흔히들 발치하나 그까짓 발치 하나라고들 말하지만 치과의사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발치이고 평생의 보람이 발치라고 말하고 싶다.
성인 발치보다도 소아치과 발치가 더 어렵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치과의사라면 상당한 수준의 치과의사라고 본다.
우선 이 어린이에게 공포감을 주지 않는 기술, 어린이에게 기술적으로 무리없이 엑스레이를 찍히게 하는 것, 울리지 않고 발치 하는 것, 엉뚱한 이야기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단번에 순간적으로 발치 하는 기술.. 그래서 어린이가 울지도 웃기도 못하는 표정을 만드는 일... 이 어린이에게 지금 발치해 주는 것이 최적인가 아닌가 하고 판단하는 지식, 이 어린이 고객을 성공적으로 진료함으로써 이들 부모까지 나의 고객으로 만들수 있을까 하는 배려 등등.. 모든 이런 관점의 철학으로 어린이 발치를 다뤄야만 진정한 발치가 되고 유능한 치과의사라고 생각 할 수 있었는데 나는 과연 얼마나 여기에 합당했는지 스스로 부끄러운 반성을 할 때가 많다. 치과의사가 자칫 잘못하면 의사라는 고상한 신분에서 기능공으로 추락하기 쉽다.
치아를 잘 빼고 잘 깎는 것은 반드시 치과의사의 영혼과 지식과 휴머니즘이 함께 할 때에만 진정한 가치가 있고, 성공하는 치료와 보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치과의사의 철칙인 것이다.
선반공에게 치아를 삭제하라고 하면 아마 기막히게도 모델 샘플데로 잘 깎아 놓을 것이다.
아주 정교하게 1미리의 오차도 없이... 또한 아주 옛날식으로 치아에 실을 얽어메고 문고리에 한쪽 실을 묶어 문을 닫는 순간 이를 뽑았다고 했을 때 다 같이 치아가 삭제됐고 발치는 됐을 망정 이것을 의술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식으로 무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엔 치과의사의 지식과 사랑과 휴머니즘이 없이 단순한 물리적, 기능적 힘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각박하다 보니 요즘의 환자들은 이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 치과의사들만이, 모름지기 자기일에 희락을 느끼고 보람으로 진료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과로가 되고 짜증이 되기 때문이다.
치과의사들은 진료하면서 의사와 환자간의 보이지 않는 애정과 휴먼이 통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돕는 보조자 또한 삼위 일체가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