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8 (수)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998)아버지와 아들/박충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한결같았던 자식사랑에
고개가 숙여지고 목이 메이곤…


1991년 설날연휴를 이용해 우리 가족이 다녀왔던 여행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 마음 속에 언제나 가장 아름다웠던 여행으로 기억되고 있다. 설날 전날 문득 아버지께서는 바다를 보러 가자는 제안을 하셨고 우리 가족은 흔쾌히 가장의 뜻에 동의했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자동차를 구입하셔서 바야흐로 ‘마이카족’의 대열에 합류하신 터라 이렇게 가족들을 데리고 가까운 곳에 드라이브를 다녀오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계셨다. 마침 군에 가 있던 둘째도 휴가를 받아 집에 와 있어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이기도 했다.


포항을 지나 우리 가족은 계속 동해를 따라 올라가다가 어느 덧 해가 저물어 도착한 곳이 칠포 해수욕장이었다. 초행길에 비교적 운전에 서투셨던 아버지께서 길을 몇 번 잘못 들기도 하고 하마터면 하수구 구멍에 차가 처박힐 뻔한 위험한 고비도 있었지만, 무사히 우리들은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수욕장 가까이 위치한 작은 모텔에 방을 잡고 그날 밤 잠깐 눈을 붙인 우리는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세찬 바닷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설날 일출을 함께 구경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지켜본 일출이었고 또한 마지막으로 지켜본 일출이기도 했다.
1년 뒤 아버지께서는 암 판정을 받으셨고 8개월 남짓 투병하시다가 이듬해 7월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께서는 숨을 거두시기 전 당신이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시던 세 아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어 주신 후 곧 정신을 잃으셨고 그날 저녁에 조용히 운명하셨다.


언제나 든든하게 우리들의 바람막이가 돼 주시던 가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너무도 큰 고통이었다.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데 힘쓰셨고 신춘문예에 3번이나 당선되실 만큼 실력 있는 아동문학가이기도 하셨던 아버지를 난 무척 존경했지만 한편으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척 어려워했다. 막상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로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왜 좀 더 아버지께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아버지께서 암 판정을 받기 몇 달 전 인턴이었던 나는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 출근하기 전에 새벽 일찍 병원 근처 운전교습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10분이면 갈 출근길을 아들을 운전교습학원에 데려다 주느라 근 40∼50분을 돌아서 가셨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해 주셨다. 그 무렵 유난히 하얗고 고우셨던 아버지의 손에 큼지막한 검버섯이 생겼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또 운전대를 잡은 당신의 어깨가 부쩍 야위어 보인다는 사실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겼던 못난 이 아들의 불효에 언제나 가슴이 시려온다.
요즘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를 아침마다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당신께서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내게 해 주셨던 그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의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한결 같았던 자식 사랑에 고개가 숙여지고 목이 메이곤 한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도 올해로 만 11년째가 된다. 그 동안 내게도 아주 사랑스러운 딸아이와 아들이 생겼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에 미처 당신께 표현 못함으로 인해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는 내 사랑을 나의 아이들에게는 많이 안아주고 놀아주고 얘기함으로써 남김없이 보여주고 싶다. 언젠가 이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큰 하늘같았던 나의 어깨가 문득 야위어 보여 녀석들의 콧등이 시큰해질 때가 오겠지만 항상 한결같이 녀석들을 사랑했던 아버지로 기억된다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 같다. 나의 아버지께서 늘 내게 그러셨던 것처럼….

 

박충제

- 92년 경북치대 졸

- 현)경산 즐거운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