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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영원한 취미/김영훈

 나는 시인으로써  독자의 마음에 감동되는  시 한편을 쓰고 싶다


한 편의 시가 심금을 울리고, 한 편의 단편소설이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게 하는 것은 문학의 기술이다. 감동을 주는 것이 어디 문학뿐이겠는가. 한 곡의 아리아로 청중을 감동시키는 음악이나, 황홀한 미술작품을 제작하기 위하여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문학 중에서도 시는 예술의 최고봉이라고 한다. 혹 문학작품이 아니더라도 글로써 문장을 남긴다는 것은 뜻 깊은 일이다.


내 증조부께선 순 한문으로 된 글을 남기셨는데, 후일 후손들이 ‘죽포유고문집’을 만들어 일가친척들이 집집마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정신적 유산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나는 문단에 등단하기 전에는 전혀 무취미의 인생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유년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방학이면 고향에 내려가, 밤이면 혼자 동구 밖 언덕에 올라가 메밀꽃이 만발한 듯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동요나 가곡을 힘껏 불러 내 자신을 달래곤 했다.
전쟁이 휩쓸고 간 어려운 시기였지만 공해 없는 자연도 맛보았다. 개울이나 둠벙가 어느 곳에든지 대바구니나 채를 들이대도 새우나 송사리 같은 작은 것들로부터 이따금 그릇에 걸려든 붕어새끼는 은빛 찬란하게 파닥거렸다.


청년시대는 남자들이 모이면 으레 담배를 권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사가 되는 그런 분위기였다. 상대에게 담배연기를 뿜어대도 실례가 되기는커녕 그것이 멋으로 보였던 때였다. 상대방은 호의로 그런 멋스러운 담배를 권하는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못핀다고 한다. 그러면 상대는 다시 술은 하느냐고 되묻는다. 나는 자신 없게 술도 잘 못한다고 대답하면, 날카로운 상대의 말 한마디, “무슨 재미로 사느냐”, “취미가 무엇이냐”고 했을 때, “달밤에 노래 부르기”가 유일한 취미라고 그때 했다면 나는 더 바보가 되었을 터이다.


군대 훈련소 시절 지급되는 화랑담배나 군의관 시절 권하는 양담배도 엄청 나를 유혹하였어도 나를 사나이답게 만들지는 못했다.
제대후, 60년대에 개업을 하고 보니 초기엔 감옥에 들어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나다니던 때에 생각하면 그곳은 바다 건너의 먼 이국이 된 듯 싶었다. 진료를 하다가 2층에서 창문 아래를 내다보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럽게 보였고, 방안에선 답답한 내 가슴을 달랠 수 없었다. 군대시절에 시작한 바둑이라도 두자니 그 싸움에 빠져들면 환자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았다.


생각 끝에 동네 화실을 찾았다. 그림을 배워 기공실이 내 개인 아틀리에가 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되리라고 여겼었다. 그때만 해도 미술이 입시경쟁의 대상이 되진 않아서, 내 진료 업무가 끝나는 시간이면 화가도 퇴근한다기에 시간이 맞지 않아 그림 배우기도 포기했다.
고심 끝에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독서를 했다. 장편소설을 읽다 보면 내 머릿속의 무대는 NG가 나기 마련이었다. 시집을 읽어보니 ‘야! 이거다!’ 내 마음에 들었다. 詩는 짧은 문장으로 되어 있으니 환자 보는 시간과 쉬는 틈틈을 잘 조화시켜주었다.


어느 겨울날 헌 책방에서 80여 권의 시집을 사다 한참을 독서삼매에 빠진적도 있다. 많은 시를 읽다보니 어쩐지 세상이 달라보였다. 자연스런 습작기를 거쳐 문단에 등단하게 되었고, 취미로 시작한 일이 직업적인 시인이 된 것이다.
문학지의 원고청탁도 늘어났다. 어떤 경우는 매수가 많은 어려운 원고청탁이 들어오면 절벽 아래 놓인 듯하여 어떻게 이 절벽을 오를까, 아스라한 느낌으로 엄청난 중압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 두 시간, 하루 이틀 구상하여 펜을 들며, 그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의 그 기분, 청탁한 분께 감사한 마음조차 들었다. 마치 등산가들이 정상을 하나씩 정복해 갈 때 그 도전과 무엇이 다르리오. 때론 밤새 원고지와 싸움을 하다 출근시간 가까이 곯아떨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 수면이 실족이라 하리오, 119도 필요 없이 눈을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