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무는 하루를 떠받치며
빈 나뭇가지 사이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을 안고 폐휴지처럼 뭉개진 자동차 한 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
견인차는 비상라이트를 켜고,
금속성 소음을 내면서
망가진 차를 끌고 당당히 간다.
허겁지겁 달려온 나의 삶처럼.
액셀레이터, 급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아가면서
질주해온 강변도로, 망가진 차,
그 유리 파편이 가로등 빛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2
엠블란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중앙선을 넘으며 미친 듯이 달린다
숨구멍을 조여 오는 죽음에의 공포처럼
꽉 막혀버린 도로를....
누군가의 호흡이 가파른가보다
대로변, 가로수 사이사이에 걸린 현수막
“귀향길 편히 다녀오세요”
얼굴 붉힌 빨간 글씨가 바람에
마구 흔들린다. 묵묵히 받쳐주고 있던
잎 떨어진 가로수들이 휘청거린다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누군가가
깨우고 있다
욕심껏 이것저것 챙겨 넣은 가방이 휘청거린다.
3
정비공장을 향해 느슨히 가고 있는 빈 기차
사람들이 남기고 떠나버린 발자국들을,
그 위에 들러붙은 먼지들을,
덜커덩거리며 가고 있다.
몇 량의 차량을 숙명처럼 매달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기차와 나란히 가고 있는 포크레인
어디서 얼마큼의 땅을 파보고 왔을까
체인 감긴 바퀴 사이에 흙이 묻어 있다.
아스팔트 위에 흙들을 더러 떨어뜨리며
어둠을 헤집으며 가고 있다.
나도 어둠을 뚫으며 가고 있다.
헤드라이트의 빛이 후미진 곳까지 비춘다
차창 밖으로는 어렵게 별이 내보인다.
네온싸인 사이로,
매연 끝에 매달린 하늘에
4
나를 싣고 달리는 차
갑자기 고장난 속도계기판
온몸을 짓누르는 통증 앞에서도
나를 밀어붙이는 일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계기판과 함께
달리는 올림픽대로
문득 백미러에 잡히는, 속도감을 잃은 채
달려온 나의 삶, 그 위에
나를 추월하려는 뒷 차
추월한 차의 백미러에 다시 잡혀있을 나,
서울 44구2042
남 현 애
·82년 연세치대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