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딴에는 무슨 득음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시끄럽게 울던 매미도 제법 조용해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 진 것이 섬돌 밑에서 귀뚜라미 간지럽게 우는 계절이 오나보다. 중국에서는 등 소평 탄생 100주년 행사와 맞물려 고구려사 왜곡이 한창이다. 등소평은 천안문 사태에서 2000~3000명의 사람을 죽였고 일부의 사람은 탱크로 밀어 죽이기도 했다. 그 때 “지금 내가 이 사태를 수습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혼란에 빠져 2~3억의 중국인민이 죽어 나가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다. 지금에 와서 많은 중국 국가의 원로들과 인민들이 그가 탄생한 날을 축하하고 칭송하는 것을 보면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정치 생명의 연장이나 권력을 누리겠다는 소아적인 판단에서가 아니라 중국 인민의 앞날을 걱정하는 애국심과 아울러 세계의 평화와 공영까지 생각하는 진(眞, 참)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연유로 그는 오늘날 까지 중국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며 추앙되고 있다.
진(眞,참)의 여러 가지 특징(2002년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지 제13호, 樂 그리고 善) 중 한 가지는 어떤 사안에 있어서 진(참)은 하나뿐이다. 어떤 사고가 났을 때도 그 진실은 하나뿐이라 본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사실이 왜곡 되는 것은 진실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것은 진이 아니다. 고구려사에 있어서도 중국의 주장도 맞고 한국의 주장도 맞는 식은 진(참)이 될 수 없다. 만일, 등소평이 살아 있다면 그런 거인의 눈에 허위(虛僞)의 일을 생각해 내는 일이 있기나 하겠는가? 적어도 그런 떳떳하지 않은 일에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 사를 왜곡하는 이유는 한국이 통일되고 난 후 옛날 조선인들의 대거 한국으로의 이동이나 한국 정부의 옛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영토 분쟁)에 대해 시비 거리를 차단하기 위해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변방의 역사로 둔갑시키려는 것이다. 통일이 되고 난 후라도 우리가 요구한다고 해서 중국이 들어 줄 것 같지도 않는 현실감 없는 얘기에 중화민국이라는 나라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예민하게 반응하며 긁어 부스럼을 스스로 만드는 것 같다.
요즈음에 와서는 한국이 중국의 식민지였다고 우기는 일까지 있다고 하니 갈수록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속으로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리 할까? 이번 기회에 옛날 고구려나 발해에 대한 우리 영토에 대한 주장을 그들의 말대로 정치 논리적으로 풀지 말고 학술적으로 한번 맞대결을 해 봤으면 한다. 우리 주장이 맞는다면 옛날 고조선이나 고구려나 발해 등의 우리 옛 영토를 다 돌려주기로 전제조건을 달고서 말이다. 그들 주장대로 우리가 그들의 식민지였다면 2차 대전 이후의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옛 영토를 다 돌려 달라고 하여도 아무런 말도 못할 것이다. 고려시대 서희 장군이 거란의 소손녕 장군과 담판을 지어 강동 6주를 돌려받은 일이 있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희 장군의 지략보다 소손녕 장군의 인물됨과 그릇됨이 더 돋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등소평의 사후에 강택민을 거쳐 후진타오가 승계해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서로 꼬집어 뜯고 싸우는 일은 그만하고 앞을 보고 내 달리자. 세탁기 통속에 들어가 있는 낡은 양말짝이나 얼룩진 팬티를 꺼내어 들고 이게 누구 것이냐고 따지는 일을 해서 무슨 소득이 있을까! 미워하려고 하여도 미워할 수 없는 일가친척이고 내 형제고 내 동포니 친일이니 친북이니 다투지 말고 온 국민이 일치단결해중국처럼 나라 발전에 온 힘을 기울이자. 지나간 얘기는 그쯤하고 넘어가자. 일정기한을 정해양심선언하게 하고 그런 사람은 관대하게 용서하고 감싸 주도록 하자. 다시는 그와 같은 못난 짓을 하지 않겠노라는 고해성사적인 반성문으로 매듭짓고 넘어가자. 그들도 배달의 자손이며 우리의 자산이 아닌가!
앞으로의 세계는 머리 좋은 민족이 세계사의 으뜸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유대인보다도 더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