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맘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은 것이 엊그제 인데, 어느새 그 계절마저 깊어가고 있습니다. 자연은 저리도 질서정연하게 매순간을 살아내고 있는데, 그 안의 나는 아직도 미혹을 헤매며 쓸데없는 집착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싶어 하찮은 길가의 은행나무 한그루에도 부러운 시선이 갑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 가장 후회스럽고 아프게 느껴지는 일은, 떠나야할 때, 포기해야 할 때 과감히 돌아서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늘 적당한 때 와서 보기 좋게 머물다 딱 알맞은 때에 미련 없이 떠날 줄 아는 자연의 섭리가 유난히 맘에 와 닿는 요즈음이라선지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머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어내며, 또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다행히 별 탈이 없이 더불어 그럭저럭 살게 되면 그 이상 다행스러운 일은 없겠지만, 때론 어떤 이유로 可不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곤혹스러운 순간에 더러 직면하게 됩니다.
사람이나, 혹은 어떤 일에 대해 절망이나 회의를 느끼거나, 이건 옳은 길이 아니다, 아름답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조차도 인간적인 욕망, 유혹, 혹은 욕심 때문에 쉽게 자신을 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아니다. 옳지 않다는 판단이 섰을 때 지금 까지 왔던 길을 포기하고 과감히 돌아 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 보입니다.
언젠가 제가 존경하는 산악인 허영호씨의 글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분에게 패배의 쓴 잔을 안겨주었던 로체샬(8,400m)등반 때의 이야기입니다. 로체샬 단독 등반에서 그는 정상 바로 밑 100m 지점까지 성공을 했습니다.
허영호씨 같은 이에게 100m라는 거리는 어떻게라도 마음만 먹으면 눈감고도 갈 수 있는 식은 죽 먹기의 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정상 아래서 돌아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영웅이 되는 길을 뿌리치고 패배자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시간상으로는 충분했지만 나의 몸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의 생각은 정상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지만 나의 몸은 내려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고비를 남겨두고 있었다. 정상까지 올라갈 자신은 있었다. 충분히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내려오는 것, 그것은 자신이 서지 않았다. 등산이라는 것이 정상에 오르는 순간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산의 정상은 겨우 목표의 절반에 위치한 반환점에 불과한 것을.." 이글을 접했을때 ‘ 이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나 같은 凡人은 이를 악물고라도 기어이 정상까지 올라가서 결국은 돌아오지 못하고 마는 만용을 저질렀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돌아서야하는 그분의 마음이 어땠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과감하게 돌아 설 수 있었던 그 용기는 득도의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죽을 힘을 다해 힘들게 올랐던 것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했던지, 혹은 정상정복이라는 커다란 욕망 앞에서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모든 이에게 영웅이 될 수 있는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면 아마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고, 만용을 넘어선, 파멸이 될 수 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늘 눈앞의 욕망이나, 그럴듯한 유혹들을 뿌리치기에는 너무나 나약합니다. 그래서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번번이 무너지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눈 앞의 만족을 위해 몇 십년후, 몇 년후, 아니 당장 가까운 미래의 불 보듯 뻔한 불행을 일부러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인생은 어떤 식으로든 정상에 오르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닌 듯합니다.
우리가 누렸던 일의 댓가를 책임져야할 후반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엔 영원한 승자도 지위도 건강도 쾌락도 그 어떤 것도 없다고 합니다. 인생은 우리가 바라는 욕심을 이루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던 그 자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