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왼쪽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는
말을 듣고도 건강검진 한번…
원장님 전화왔는데요. 신문사라고 합니다.
예? 맞습니다. 아~! 그 나의 첫 피붙이였던 앙팡요. 그게...몇 년 전인가?... 20일까지요?
예. 나의 생활이 너무 단조롭고 단순해서 노력해도 안되면 미리 연락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랬다. 나의 요즘 생활이 다람쥐 체바퀴 돌 듯 했다.(몇 년 전부터 건강상 이유로 술과 담배 일절안함) 오로지 치과일, 애들과 놀아주고 일요일엔 교회,신기(神氣)있고 독심술 있는 아내로부터 정신교육과 더불어 세뇌교육, 수족관(해수어, 담수어)과 온실수목관리...이 모든것이 일주일 단위, 짧게는 하루 단위로 반복된다. 나에게 이런 지루한(?) 안정된 생활패턴이 온 게 언제였나...1 년 전(?)... 단조롭다고 말을 내 뱉고나니 두 달 전 그러니까 7월 31일 장인어른이 세상을 뜨셨다.
나는 차남, 아내는 막내인데 집사람이 일을 하게 되면서 장모님(위생관념이 강하시고 술, 담배하는 남자를 너무너무 싫어 하시는)이 우리 아이를 책임지시는 바람에 장인어른도 우리가 5년전부터 부산에서 이리로 모시게 되었다.
당신께서는 말기 폐암으로 손 쓸 틈 없이 진단 후 2개월 만에 우리식구들과 작별을 하게 되었다.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왼쪽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는 말을 듣고서도 건강검진 한 번 직접 챙겨드리지 못하고 방치한 것이 화근이자 우리 부부를 죄책감이라는 단어속에 가둬 버렸다.
나로서는, 아내도 마찬가지이지만 부모님 네 분 중 처음으로 돌아가시는 것이어서 엄청난 고통과 슬픔을 겪으면서 인생과 자식과 부부의 의미, 삶과 죽음을 다시 새삼 생각하게하는 계기가 되었고 천붕지통(天崩之痛)이 무엇인지도 아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가슴 깊숙히 각인되게 되었다.
장례는 3일장을 치르고 화장을 했다. 집사람은 거의 매일 시한부 삶을 사신 장인어른을 찾아뵙고 집으로 와서는 좋아하지 않는 술을 만취할 정도로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 이번 일을 치르면서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두 장면이 있다. 아마도 나의 장인어른에 대한 추억이 숨쉬는 동안에는 나를 삶의 한 부분에서 계속 묶어 둘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장인어른이 시한부 선고를 받기 전에 치과에서 틀니를 재제작 중에 있었고 그 완성된 틀니를 막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르고 핏기없는 입에 직접 맞추어 넣어주는 아내의 모습, 또 화장장에서 당신의 관이 소각되기 위해 자동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냉정을 유지하시던 장모님이 다른 사람은 모르시게 손을 살짝 들고 마지막 이별의 의미로 손 흔드시는 모습...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더 안타까운 것은 못난, 사위 때문에 타향에서 아들 품이 아닌 딸(그러나 가장 사랑한 자식) 품에서 돌아가시게 해서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서 당신의 순진무구한 어린 모습을 이제야 봅니다. 장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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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의신보 윤XX 기자입니다.6~7년전에 “나의사랑 나의앙팡"이라는 글 쓰신 원장님 맞으시죠. 치의신보 전에 것 보다가 연락 드렸습니다.앙팡 강아지 이야기 맞으시죠. 원고 부탁합니다. 날짜를 정해 주시죠.
윤기자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과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가 정리되고 불필요한 미련,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이상홍
- 94년 부산치대 졸
현)경남 진주시 하대동
아카시아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