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의 3년이라는 세월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었던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1992년 4월의 어느 화창한 날, 마지막 수업시간, 맨 뒤에 앉아 졸고있던 나에게 험상궂게 생긴 동기하나가 다가온다.
“야~!! 니.. 일단 따라온나" --;허걱!
이렇게 영문도 모른채 따라간 곳이 곰팡이 냄새 퀴퀴하게 나는 밴드연습실이었고 부산대학교 치과대학내 ‘Dentaphone’이라는 메탈 밴드동아리에 가입을 하게 됐다.
예과 1학년때, 그때의 나는 고등학교때의 빡빡머리를 보상이라도 하듯, 약간 긴머리(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촌스러웠음)를 하고 있었고, 이를 심상치 않게 봤던 동기생 하나가 나를 같은 밴드일원으로 점찍었던 것이다.
그렇게 음악과 인연을 맺고난 후, 예과 2년을 ‘음악’이라는 친구와 같이 보냈다.
메탈음악을 처음 접해본 나는 생소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는 음악에 대한 매력으로 활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소극적이지도 않았던 그런 시간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음악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거의 의무감으로 음악활동을 했고, 본과에 진입하고 나서는 자연스레 음악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막연히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내맘속 깊은곳에 자리잡아가고 있던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렇게 그렇게... 졸업을 했다.
훈련소를 마치고 보건소로 배치돼 경북 청도군 운문면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낮에는 환자진료와 보건소 업무에 그나마 시간을 보냈지만, 밤이 되면 왠지모를 적막감에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던 어느날, 문득 밴드활동 할때의 추억이 떠올라 “밴드활동을 다시 해볼까?" “다시 음악을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던중 ‘하드레코딩(일명컴퓨터음악, 미디음악)’ 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순간 혼자서도 얼마든지 밴드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동안 먹고 놀고 자도 하는 무미건조한 공보의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하드레코딩에 관한 서적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드레코딩’이란 컴퓨터를 이용해 악기를 연주하고 거기에 맞추어 기타나 베이스 등등 다른 악기소리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녹음해 마스터링 하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음악작업을 하는 진보된 작업방식이다.
예전에는 고가의 녹음장비가 갖춰진 큰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의 지시에 따라 연주하고 값비싼 레코딩 기계에 녹음하는 방식이었지만, 요즘 뮤지션들은 거의 다 집에 홈스튜디오를 갖추고 혼자서 연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녹음,마스터링하는 방식의 이 하드레코딩 방식을 선호한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창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며칠을 관사방에서 들뜬맘으로 보냈다. 거의 독학으로 공부를 해 조금씩 곡을 만들어가던 어느날, 드디어 나의 첫번째 곡이 완성됐다.
지금 들으면 정말 촌스러운 곡이지만, 그때의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짜릿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나는 생각나는대로 매일 밤 조금씩 작업을 한 결과, 꿈에 그리던 나만의 첫 앨범을 만들게 됐다. 비록 비공식 앨범이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맘껏하면서 미흡하지만, 그런대로 좋은 음질의 이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앨범을 갖게 된 것이다.
처음이라 작품성은 미흡하지만, 같이 밴드활동을 했던 동기·선배들에게도 선보이고 나름대로 좋은 평가도 받았다(순전히 내 생각인가?).
이렇게 힘을 얻어 공보의 3년동안 수십곡 정도의 그런대로 많은 양의 음악작업을 했고, 그 결과 2장의 비공식 앨범을 냈으며, 지금은 세번째 앨범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낯선 곳에서의 공보의 3년이라는 세월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내가 하고싶은 만큼 열심히 할수 있었던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한 내 인생에 가장 잊지못할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daum’ 카페 (cafe.daum.net/heybeck)를 만들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