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와 장비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진료에 임하는 내 자신의 마음도
새롭게 그리고 환자입장서 하루하루를…
최근 몇개월 동안은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에 옮기느라 계절의 정취도 느끼지 못할만큼 무척 바쁜 나날이었다. 광주시 북구 운암동에 자리를 잡은 지 어언 11년째, 개원초기 2년을 제외하곤 줄곧 운암동 주민들과 동고동락을 같이 하면서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개원 13년째를 맞다보니 익숙한 것, 낯설지 않음이 편했고 꼬맹이었던 환자가 훌쩍 자라 성인이 되어 다시 찾는 등 단골환자들과 만남도 즐거웠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은 권태감과 함께 치과의사로서 진료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언가 변화와 돌파구가 필요했다.
“1년간 해외연수!, 아니면 새로운 동네로 이전개원을 해볼까, 차라리 마음에 맞는 동료와 공동개원을 모색해 볼까(?)” 등등의 여러 고민끝에 새롭게 치과를 단장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원래 길 건너 쪽에 개원하고 있다가 97년도에 이곳으로 이전하였으니 인테리어 한지도 7년이 되었다. 그때에 비하면 적지 않는 비용 탓에 선뜻 결정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불황의 골이 깊은 탓에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주위의 충고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이왕 마음먹은 것 전면 개보수와 함께 10년이상 된 낡은 장비도 새롭게 교체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막상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하려고 하니 골치아픈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새로운 장소에 개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사기간동안 임시로 진료할 수 있는 장소를 찾든지, 아니면 아예 문을 닫아야 했다. 그리고 공사에 관련된 많은 업체들을 섭외하고 결정내리는 일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많아졌다.
한달동안 쉬어볼까도 했지만 진료를 하는 것이 우리치과를 찾아 주는 환자들에게 불편을 최소화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치과옆에 있는 학원의 배려로 학생들의 학습공간을 한달동안 임시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창고에 보관할 이삿짐과 임시진료에 필요한 것들을 분류하고자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뒤져보게 되었다. 이삿짐을 싸기 위해 항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오래된 장비들과 환자들의 진료자료들을 살펴보니 물밀 듯이 그동안 추억들과 사건들이 떠올랐다.
오랜 단골이었던 환자가족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가족해체로 뿔뿔히 흩어져 이제는 만나기 어렵게 된 마음아픈 일, 코흘리개 환자가 명문대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아온 일, 치료기간내내 까탈스러웠던 환자를 달래가며 무사히 장치를 풀고 만족할만한 치료성과를 거둬 뿌듯했던 일.... 또 먼지 쌓인 원장실 책상 서랍 속에서 발견한 지금은 모대학 교수가 된 친구가 91년 미국 유학시절 보낸 편지는 옛 추억을 아스라이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금 학원 대기실은 치과진료실, 강의실 중 한개는 환자 대기실, 한개는 원장실이 되어 치과 환자들은 잠깐 동안이나마 칠판에 낙서를 하며 학원생이 되어있다. 마치 공중보건의 시절의 진료실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그때는 초보치과의사로서 땀흘리며 얼마나 열심히 진료 하였던가!
이제 1주일 정도만 지나면 정들었던 과거 공간은 완전히 사라지고 새롭게 탈바꿈한 공간으로 옮기게 된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변했지만 91년 개원초기에 구입했던 금성사 마크가 새겨진 냉장고만은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빗바래진 색깔이 어색하긴 하지만 멀쩡해 버리기 아깝기도 했고 처음 개원하면서 느꼈던 마음가짐이 금성사 냉장고를 통해 투영되었던 것이다. 개원을 하고 맨 처음으로 맞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다졌던 초심을 다시 가져보고 싶었다. 실내와 장비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진료에 임하는 내 자신의 마음도 새롭게, 그리고 환자입장에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낸다면 현재의 불황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박 창 헌
·88년 전남치대 졸
·현)광주지부 공보이사
광주 박창헌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