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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스파게티/이상은


몸에 변화를 느꼈다.
오랫동안의 해후에 대한 기다림도 이제는 희미해졌다.
확신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말 그 날이 오리라는 믿음.
그러나 지금은 솜털만 한 희망만을 마음 한 구석에, 혹시나 땅 위로 싹이 솟아오를까하는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슬픔으로, 묻어두었다.


한 달 전쯤 마카로니가 이곳으로 올 때 넘쳐났던 환희의 분수를 기억한다. 드.디.어. 그 날이 왔구나! 그러나 마카로니는 시큰둥했다. 그는 그 날에 대한 기대도 꿈도 없었다. 나조차도 그 날에 이뤄질 그 ‘영광’을 감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그 날을 위해 여기에 보내졌다는 것을 오랜 기다림의 열정으로 알 수가 있었다.
그 이후 아무런 사건이 없었다. 나의 몸의 변화를 알아챈 건 요즈음 들어서였다. 내 정수리 위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한동안 스물 스물한 느낌이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러나 그 것은 나의 변화를 알리는 전조였다. 매끄럽고 윤기 있던 몸도 이제는 쭈글쭈글 해졌다. 머리 위에서는 연두색의 새싹이 돋으려하고 있었다.


내가 고향에 있었을 때 대지는 나에게 속삭여 주었다. 네 머리 위에서 싹이 돋아 새 생명을 준비하기전이 네가 큰일에 쓰여지는 그 ‘영광’의 순간이야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쓸모 있게 쓰일 수 있는 때지. 그러나 싹이 나버리면 그 땐 이미 늦어 너는 다음 세대를 위해 너의 몸을 희생해야 돼. 난 그 때부터 기도했다. ‘영광’의 순간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 ‘영광’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될 것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을 기대하면 할수록 기다림은 너무 가혹했다. 하나의 위안이라면 그 날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사랑 토마토. 그녀가 처음 이 곳으로 왔을 때, 초록의 풋풋한 얼굴로 인사하던 것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지금은 그녀도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나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놀려댔다.


그러나 지금은 기다림에 지친 나의 위로 자가 됐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카로니가 우리에게 왔을 때 그가 메시아라고 생각했었다. 출중한 외모에 태생까지도 예언에 쓰인 대로 지중해 지방이었으므로. 우린 파티를 열었다.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크나큰 기대를 가지고 그때 나는 몸이 좋았었다. 자르르르 흐르는 윤기 그리고 탱탱한 백옥 같은 피부를 자랑하고 다녔다.
정작 파티의 주인공은 영문을 몰랐다. 왜 자신이 오자마자 파티 꼬깔을 쓰고 터지는 축포의 종이 색 끈을 머리에 감아야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가 온 후 치즈가루, 토마토, 미트볼 마늘과 나 양파를 모아서 축제를 열어주었다. 음악과 춤 그리고 기쁨이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날을 기다리며 꾹꾹 쌓아 두었던 기나긴 세월의 긴장이 잠시나마 눈 녹듯 녹았다. 마카로니의 파티에서 나의 사랑 토마토 그녀와 춤을 추었다. 그녀도 이제는 탄력 잃은 붉은 얼굴로 변해있었다.


그래도 예뻤고 나의 탄력 잃은 피부에 비하면 좋았다. 오랫동안 그 날을 기다리는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몰랐다. 나와 그녀의 모습이 그 날을 기다리다 그만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했고 절망하고 있는 마늘과 미트볼에게도 희망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치즈가루가 자신의 임무는 그 일이 아니라고 이곳을 뛰쳐나가 다른 일을 하고 돌아왔을 때 방황에서 붙잡아준 것도 나였다. 설사 그 날이 오지 않더라도 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고, 기쁨으로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마늘은 그 날을 두려워했다. 그 날 그는 크게 쓰여질 것이지만 자신이 산산이 쪼개져야 한다는 예언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도 그는 그 영광의 날에 쓰여지길 원했다. 그도 머리 위가 푸르스름해졌다. 그도 늙었다. 미트볼은 항상 변함없이 의연했다. 의지가 강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절대 변하지 않으려고 몸을 똘똘 접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