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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에…/한 명 숙


서둘러 노후의 일을 생각하고
어떤일을 할까 물었더니
이 일이 제일 마음에 든다


 


코메디언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늙어 구박받는 왕년의 스타 코메디언이 되는 것 보다는 젊어 멀쩡한 척 살다가 늙어 남을 웃기는 직업을 가진다면 그들은 내 주름 속에서도 웃음을 찾아보려 애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서다.


내 아들들이 자라 나를 떠나고 홀로 남겨진 상태에서 남을 웃겨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녀석들은 어디에서도 내가 외로울까, 슬플까 걱정없이 잘 살지 않을까. 웃음을 공부하고 웃음을 연구하는 이 늙은 에미를 정말 우습게 생각하며 살아주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하루 하루 지겨울 만큼의 꼬마들의 눈물과 비명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순간적으로 흘려보낸 웃음이 깊은 피로 속에서도 미칠 듯이 그리울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웃음에 대한 그리움으로 코메디언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며칠전.


발치를 하고 난 후 한 젊은 남자가 물어왔다. “ 저-- 뭘 조심해야 하지요? ” 매일 매일 반복되는 대답을 해 주려다 “아! 세가지만 조심 하시면 됩니다. 담배, 술 그리고 여자입니다.” 남자는 마지막 나의 멘트에 눈 평수를 넓힌다 “ 저-- 다른 것은 이해가 되는데 여자는 왜? ” 나는 무표정하게 이렇게 답했다.“ 곰곰이 생각해보시면 알겁니다” 남자는 지혈 거즈를 물고 씩-- 웃고 나간다. 그래, 해석은 당신의 몫이지만 오늘 하루 그 웃음으로 발치의 통증도 잊고 가볍고 즐겁게 보내기를….


사랑니가 문제가 있어 찾아온 30대 초반의 남자가 있었다. 사진을 찍어 보니 그리 만만한 경우가 아닌 듯 하여 내심 발치도 하기 전에 하기 싫다는 기분이 앞질러 내 얼굴을 덮어버렸다. 어찌할까 고민하는 나의 얼굴이 불안의 연기가 되어 전달 된 듯 그의 얼굴도 사뭇 어두운 표정으로 변했다. 사랑니의 위치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와 함께 발치의 어려움을 장시간 설명하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다시피 전 여자고 힘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 치아를 뽑기 위해서는 제가 산삼 뿌리 정도는 먹어야 될 것 같습니다. 다음번 병원에 오실 때 산삼을 가지고 와 주세요. 그러면 당신의 정성과 제 힘이 만나 잘 뽑힐지 누가 압니까?”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던 그는 웃어야 할지 심각해져야 할지 모르는 어중간한 표정을 짓더니 알았다며 돌아갔다.


다음날 그의 손에는 ‘진생업’ 한 박스가 들려 있었고 직원들과 나는 터져나오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산삼을 구할 돈도 시간도 없어 이것으로 라도 힘을 내달라는 그를 바라보며 참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웃음을 함께 했다.


돌아보면 나의 헛소리와 식은 소리들은 그 이름만큼 비어있지 않았고 사람들의 작고 큰 웃음들이 차갑게 굴러갈 듯한 내인생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었던 순간이 많았던 점을 생각해 보면 내가 웃음에게 진 빚이 많다. 이제 한 칸의 계단을 올라서면 40이 된다. 인생으로 치면 조금 높은 곳에 다다랐고 여기서 내가 올라왔던 계단들을 보니 갖가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 속에서 슬픔과 아픔이 이리저리 뒤엉켜 먼지를 덮어쓰고 멀어져 가고 있다. 아직 젊다는 사실을 나 역시 인정하고 살고 있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동창들의 주름과 흰머리에서 노화를 바늘에 찔리듯 아프게 확인하는 일도 분명 잦아지고 있다. 그래서 서둘러 노후의 일을 생각하게 되고 어떤 일을 할까, 하고 싶은가를 자신에게 물었더니 이 일이 제일 마음에 든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지만 신이 인류를 창조할 때 태초에 자연을 만들고 인간을 만드니 보기 좋았다는 구절처럼 노후의 꿈을 정하고 나니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재능에 있어 문제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고자 하는 설계가 먼저 나왔으니 부지런히 자재를 모아 볼 일이다. 입심 좋은 동네 아줌마와 친구되는 일도 내 미래에 대한 투자가 되겠지. 오늘은 그녀에게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고 꼬셔야겠다.

 

한 명 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