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한 현실 속에서
나의 영혼과 감정이 말라간다고
느낄때 함께 읽어주면…
12월이 거의 끝나 세밑이 되도록 따스한 날이 계속되더니, 깊은 잠에서 동장군이 깬 듯 매서운 바람이 불어 계절을 잊은 우리의 마음을 바싹 긴장시켜 줍니다. 차가운 바람뿐만 아니라 주위 여러 일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할 때 따스한 방에서 발을 쭉 뻗고 마음의 짐을 내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권할까 합니다.
첫 번째 책의 제목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이며, 내용은 부모를 잃은 어린 인디언 소년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서만 가지려고 하지 않고, 또한 인간을 자연의 정복자가 아닌 한 일부로서 어울려 살아가는 인생관입니다. 더 많이 못 가져서,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뺏어서라도 가져야 하는 제로섬 게임에 익숙한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만 가지기 그리고 그 외는 다른 이를 위해 남겨야 한다는 생각은 가장 좋은 것은 내가 가져야만 한다는 우리 욕심의 허상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행복은 소유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른 이와 나눔을 통하여 내 영혼을 풍요롭게 할 때 더 커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자연은 우리의 편의를 위하여 파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서 함께 공존할 때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울 수 있겠지요. 이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은 우리가 소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작은 나무"인 이 인디언 소년의 영혼이 점점 더 커 가는 것을 읽으며 정말로 나의 영혼이 따스해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권하고 싶은 책은 “진주 귀고리 소녀" 이며, 내용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인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 라는 미술 작품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미술 작품과 화가가 살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소설 속 이야기는 완전한 허구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하는 것은 단순히 한 미술 작품을 통하여 작가가 얼마나 많은 현실성 있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나 입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듯 작품 속의 소녀의 눈빛은 너무나 미묘해 많은 사연을 띤 듯 합니다. 그 눈빛에서 무엇을 읽어 가냐는 완전히 보는 사람의 몫이겠지요. 그런데 작가는 그 눈빛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이끌어 갑니다. 매일 환자의 작은 입 안에서 더 할 수 없이 좁은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더 작은 눈을 통하여서도 이렇듯 큰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합니다. 그림의 연대기에 따른 작가의 종횡 무진한 필체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17세기 네덜란드의 한 마을 속에서 그림 속의 소녀가 된 듯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창의적이라는 것, 또한 우리의 사고의 폭을 규정하지 않고 맘껏 펼쳐본다는 것이 진료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지내는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일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위에서 권한 두 권의 책은 공통점이 없는 듯 하면서도 함께 묶을 수 있는 것은 빡빡한 현실 속에서 나의 영혼과 감성이 말라간다고 느낄 때 함께 읽어주면 마른 나무에 봄비가 내리듯 우리의 정신을 적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주위에서 나의 눈길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이가 있음을 느끼며 힘든 시간일지라도 조금씩 나눌 수 있는 환한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권영희
- 87년 서울치대 졸
- 현)서울 장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