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을 겪으면서
동치미속에서 생활해 왔기에
여전히 나는 의국원으로 남아 있다
어느덧, 참으로 바쁘고, 해내어야만 할 일이 너무도 많은 나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보고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시간 내어 만나기 힘든 요즘이다.
주말과 휴일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로 약속을 한터라, 가뜩이나 더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그나마, 경조사가 있을 때나, 학회, 망년회 등의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마련되어야만, 보고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매일 매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만 하는 애별리고만큼이나 불행한 일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있다. 내가 수련 받았던 의국이 그러한 존재인 것이다.
나에게 많은 추억과 보람과 희망을 가져다준 우리 의국출신 선생님들이 매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다행히 의국원들이 매일 매일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름 하여 동치미 카페가 그 사랑방이다.
동치미가 무슨 뜻이냐 하면, 겨울에 먹는 물김치를 이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의료원 치과의국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동아의료원 치과 구강외과에서 수련을 받았다. 당시는 의국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정리가 되지 않았기에,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배와 후배가 서로 믿고, 힘을 합쳐야만 가능했다. 선배가 많이 알고, 후배가 그것을 따르기만하면 되는 전통 있는 그런 의국은 아니었다. 그러했기에, 많은 것을 같이 공부하고, 같이 대화하고 배려하면서 하나씩 길을 만들어 갔다. 그것이 전통이 되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의국은 많은 박사를 배출 했고, 의국 출신 교수도 탄생시켰다. 또한 의국 출신의 선생들은 일부는 종합병원의 훌륭한 과장으로 또 일부는 성공한 개원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인화의 그 전통은 작금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우리 의국원이 한번 모임이라도 가질 랑이면, 다모일 장소를 구하기 힘든 정도이다. 왜냐하면 의국원 뿐 아니라, 부부동반, 혹은 2세들까지 함께 모이기 때문이다. 수련을 마치고 의국을 나간 오비팀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친정을 들르는 심정으로 전국에서 모여든다.
당연히, 이런 의국원들이기에, 가끔씩 만나는 것으로는 한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만든 것이 동치미 카페 사이트이다. 2000년에 개설되어 지금까지 만 5년이 넘었고, 글 작성 건만도 1000여건. 그 리플까지 다 모을라 치면, 엄청난 건수의 글이 올라와 있다.
그 내용에는 동치미 회원의 일상사, 경조사, 환자 진료일지, 군대있는 의국원의 가족소사, 참석한 외국 학회의 분위기, 의국의 일정, 전국의 맛난 집, 개인 고민거리나 잘못의 고해성사(?), 선배와 후배의 교류의 장 등등.
의국원의 동고동락이 어우러져 녹아 있다. 정말 인생을 함께 동행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의국을 떠난 지, 10여년이 되어도, 언제나 함께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동치미속에서 생활해 왔기에,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의국원으로 남아 있다. 지시와 복종이 아닌, 배려와 존경으로 역어진 의국. 그러한 의국을 가졌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출근하면서, 바로 동치미 사이트부터 방문을 한다. 다들 별일은 없는지.
특별 이벤트가 만들어져 있는지. 의국의 일정은 어떤지. 등등.
다들, 올해도 건강하고, 멋진 모습으로 하루하루 발전하는 모습이 많이 올라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