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생(生)이라는 굶주린 독수리에게
가슴 한켠을 파먹힌 자들의 이야기를 아는가
그들은 그후로 오랫동안,
어떤 외투로도 몸을 덮힐 수 없는
우수의 계절을 살아간다.
나는 김민호 선생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outside’라는 닉네임으로 올라온 그분의 사진을 몇장 본 것이 전부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마련된 그의 사진들을 다시보며,
나는 그와 채 인사를 나눌 사이도 없이
허공 속,
찰라에 펄럭이는 영혼의 풍경 한자락에 그만, 눈을 가리우고 만다.
삶이 질펀히 펼쳐놓은 잔치의 한복판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듯,
비껴앉은 그의 시선은
이승의 풍경들이 그려내는 속내를 그저 물끄러미 건너다볼 뿐이다.
가만히 귀 기울인 그의 귓바퀴에선 잦아드는 울음의 뒤끝이거나
길 떠나려 몸을 뒤채는 바람의 여운이 새어나온다.
한 걸음 뒤에서 생을 바라다보는 자에게,
저무는 어스럼녘은 다사로운 한줌의 위안.
숨죽인 어둠이 가만히 몸을 감싸올 때, 비로소 그는 깊은 숨을 내쉰다.
한낮의 햇살 아래서 바스러지는 웃음을 웃고 있을 때에도
그의 목덜미 뒤엔 덜 말라 눅눅한 슬픔이 깃들어 있으니,
어둠 한켠을 비집고 불빛 아래 고이는 위안과 안도를 어찌 마다하겠는가.
새가 가져가버린 가슴 한 귀퉁이는
내내 안타까이 지상을 떠돌지만,
이승에선 그것을 돌려받은 이가 없다 하고,
구원과 안식처는 어느 곳에도 없으니
그와 나,
우리는 이제 이 생에서는 결코 오지 않을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다릴 뿐이다.
Epilogue Written By 김 향(작가, 번역가)
노출과 카메라 대신
끊임없이 삶이 뭐냐고 물어보고
이전에 느껴보지 못햇던 낯선…
글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여태 몰래 숨겨둔 나만의 비밀을 들킨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번도 만난 적 없고, 한마디도 얘기해 본 적 없었지만 그렇게 우리는 몇장의 사진을 가지고 가슴속 깊이 숨겨 놓았던 얘기들을 털어 놓았다.
사진이 뭘까?
낯선 여행지에서 꼭꼭 찍었던 사진.
살면서 만들었던 증마다 붙어있던 사진.
그냥 내가, 혹은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찍혀있는 사진.
좋다 나쁘다 외에 특별히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진.
1년전 처음 사진을 배울때만 해도 그저 환자 사진 찍는데 도움이 되려니 했다.
20년 치과의사로서도 신통찮은 주제에, 남들은 어떻게 사나 늘 궁금했는데 우연히 사진가 한사람을 알게 되었다. 마침 교정이나 보철 때문에 기계적으로 찍어왔던 사진인데 이참에 사진,카메라 공부를 해봐야 되겠다 싶었다.
근데 처음부터 사진 선생인 김홍희는 사진을 찍어 오라고했다.
노출도 잘 모르고 뭘, 어떻게 찍어야 될 줄도 잘 모르는데도 무조건 매주 1통 이상을 찍어 오라고 했다. 찍을 게 없다고 두달을 버티던 어느날, 그는 나에게 정말로 단 한번만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어 오라고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사진은 사진이지 뭘 하고 싶은 얘기를 사진으로 찍어 오느냐고 차마 말은 못하고 속으로 코웃음쳤다.
그러나 살다 보면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지만 그날 25년전 대학때 자취했던 동네를 가게되었다. 5월 어느날, 한낮의 뜨거운 햇볕아래 숨을 헐떡이며 신촌 봉원동 고갯길을 기어 오르면서 나는 완벽하게 25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밤새 포커판을 벌이다 돌아오는 길을 환하게 비추던 허연 벚꽃나무가 있던 그 자리, 술에 취해 까닭없이 악을쓰며 울던 그 자리….
뭐에 씌인듯 2시간 가량 동네를 돌아 다니며 미친듯이 셔터를 눌렀다. 한참을 앉아 있다 힘이 쭉 빠진채 내려오는 길은 한없이 멀었고, 알 수 없는 서글픔으로 가슴이 아려왔다.
며칠후 현상된 슬라이드 필름을 들여다 보곤 또한번 가슴이 아려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