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보며
카메라 하나 들쳐 메고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삼십년이란 세월을 살아오며 지금껏 나에게 있어 카메라는 참 낯선 기계였으며, 사진이란 것 또한 아주 어릴 적 내 모습을 담은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항상 아쉬웠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도 자식이란 존재는 참 대단한 것이었나 보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삶의 소중한 기억 특히 어린시절의 아름답고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실마리를 남겨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 내 사진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어느덧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여러대의 카메라와 렌즈들을 장만했고, 여러 사진과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도 기웃거리고, 사진 소모임 활동을 하고 나의 건조하고 지극히 일상적이던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막연히 카메라를 들면 아주 거창한 것, 대단한 것을 찍어야 하는 줄 알았고 그러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찍은 것은 흔한 강바닥이었고, 흔들리는 그 무엇이었고, 이름없는 나무며 풀, 그리움이고 외로움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내가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바로 나, ‘김진이’ 란다.
항상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여기까지 떠밀려 왔는데 바로 거기에 내가 있었다. 그 순간 난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그 무언가를 들켜버린 듯한 기분이 들면서도 속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사진이란 대상을 찍어서 영구보존하는 것쯤으로 알았었는데, 이 차디찬 기계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대상과 교감하고 이미지를 생산하고 세상에 영원불변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던 그 순간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난 12월, 여러 동료선생님들과 함께 첫 전시회를 가졌다. 조그맣게 12점의 사진을 시리즈로 전시했는데, ‘가끔 마음이 외로울 때 강가에 홀로 앉아 강물을 멍하니 바라볼 때의 그 심정을 표현한 것 같다’는 한 감상자의 글을 보는 순간, 모든 사진 속에는 사진가와 감상자 이 두 사람이 존재한다는 안셀 아담스의 말처럼 난 비로소 내 사진이 완성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너무도 행복했다.
이제 잔치도 끝이 나고 다소 분주함에서 벗어나 또 다른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지난날 눈을 가리고 걷는 것처럼 똑같은 길을 돌고 돌았던 원형방황을 피하기 위해 가끔은 지나온 삶을 뒤적여보고, 나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보며 카메라 하나 들쳐 메고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을 다시 떠날 것이다.
그 여행의 길이 언제나 즐겁고 순탄한 길 일수만은 없겠지만 여행의 끝자락에는 넉넉한 가슴으로 세상을 관조하며 아름답게 늙어가는 한 소박한 중년의 여인과 조우하는 작은 소망 하나를 가져본다.
지금 밖에는 하루 종일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고, 난 지금 아들 녀석의 장난감이 되어버린 FM2의 셔터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상상에 웃음 짓는다.
김진이
- 97년 전남치대 졸
- 현)광주 수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