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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7)실용주의와 합리주의를 넘어서/이한우

틀니를 끼워줘도
잘 사용도 못할 환자들이지만
죽을때 꼭 관에까지…

 


“아이고, 선상님! 내가 선상님 기다니느라 죽을 뻔 했시오. 이번에 또 안 해주면 내 또 일년을 우찌 기다릴끼요. 선상님, 우리 선상님. 우찌 우리 선상님은 더 젊어진다냐, 아이고 선상님”
“아이, 이 할마시는 또 술 마시고 왔구먼. 병원에 올 때 술 마시고 오면 내가 절대로 치료안 해준다고 했죠?”


“아이고, 선상님. 내가 술은 무신 술을 마셨다고 그라요”
“아니 그럼 이 술 냄새는 뭔데?”
“ 아, 그거야 저기 어디서 풍겨오는 냄샌가 난 모르갔는디.”
“ 그건 그렇고 할머니는 작년에 틀니 해줬잖아요. 그건 어쨌는데?”
“아, 그건 술 먹고 어쩌다 넘어졌는데 다 부셔져서 내버려뿌렸소.”
“참 내, 알았어요. 어쨌든 다시는 술 먹고 안 온다고 약속하면 해주지.”
“암요, 암요. 술은 무신 술. 절대 안 묵을낀게 걱정 마시오. 고맙습니다. 선상님, 우리 선상님”
한번도 술을 안 마시고 병원에 온 적이 없는 자그마한 할머니는 잘 꺽어지지도 않는 허리를  한껏 꺾어 절을 해댄다.
진료가 끝나고 조촐한 다과를 먹는 뒷자리에서 수녀님 왈, “ 그  할머니 때문에 저희는 정말 마음 고생 많이했어요, 선생님”
“왜요?”


“그 할머니는 이번엔 안 된다고 수없이 말을 했는데도 매일 같이 술 먹고 찾아와서 떼를 썼어요. 어제는 만약에 이번에 안해주면 내년까지 자기는 살 자신도 없고해서 자살할거라고 하더라니까요. 물론 말로만 해보는 수도 있지만 여기 계시는 분들의 사정이 그런지라 혹시나 자살을 하면 어쩔까해서요.  다른 일 때문이긴 하지만 요구를 못 들어주니까 실제로 자살한 사람도 있거든요.”
정해진 숫자의 환자밖에 진료할 수 없는 사정으로 사실 그 환자는 이번에 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분위기가 주는 힘이 묘했던가, 느낌이었을까? 나는 농담을 해가며 할머니의 요구를 들어주고 말았다. 평소 같으면 냉담했을 내가... 어쨌든 정말 그런 일이라도 일어났다면 그 마음의 고통과 번민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생각하니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그 할아버지가 마음에 걸린다. 위나 아래나 전부 부분틀니를 해야하는 환자인데 남은 이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 지금을 할 수가 없고 몇 개의 이를 빼고 내년에 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설명 드렸더니 흔쾌히 웃으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돌아간 할아버지. 옆에 있는 수녀님에게 그렇게 하자고 했을 때 수녀님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한 말씀이 가슴에 걸렸다


“그런데 선생님, 저 환자가 내년에 틀니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폐암 말기이시거든요.”
“아아, 네에. 그러면 사실 더 안되겠네요. 폐암 말기에 발치를 하고 하는 것은 좋지 않거든요.”
그럴까, 얼마 쓰지도 못할 틀니를 끼워준 날. 일그러진 얼굴을 거울로 보면서 좋아라 하던 환자들.
“그런데 할머니, 얼굴이 보이세요, 정말 예뻐졌는데”
“암, 보이고말고. 뽀얀게 좋네.”
한센씨 병이 할퀴고 간 상흔으로 눈은 이미 거의 멀어 보이지도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 기뻐하던 환자들.


“할아버지는 입이 안 벌어져서 틀니를 만들어줘도 끼기 힘들어요. 그리고 부분틀니는 고리가 있는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이 없어서 끼고 빼기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도 왜 자꾸 해달라고 하세요?”
“할 수 있다니께, 해 주시기만 한다면, 선상님, 제발”
이제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예전에 모를 때의 말하던 버릇이다. 끼지도 못할 거라던 생각은 나의 기우였고 그들은 양쪽 다 손가락이 없어도 몽퉁한 두 손목을 모아 틀니를 넣었으며 젓가락을 손목에 끼워 그것으로 고리에 걸어 틀니를 빼내었다.
입 주위 근육이 너무 쳐져 입술 주변 근육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환자들. 그들은 근육의 문제 때문에 틀니를 끼워줘도 잘 사용도 못할 환자들이지만 죽을 때 꼭 관에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좋아들 했다.


그들에게 틀니는 잘 사용하느냐의 문제를 넘어선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