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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8)세상에서 정말 불쌍한 내 딸!

 

내 평생을 다해 노력했어도
결코 받아본 적이 없는
환상의 점수 45점을…


어느 날 초등학교 삼학년인 딸아이가 내게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을 붙여왔다.
“아빠 나 참 불쌍해요!”
“왜 네가 불쌍하냐? 엄마가 없니, 아빠가 없니?”
대개 이런 경우에는 다른 집 아이가 무슨 무슨 좋은 장난감이나 인형 혹은 컴퓨터 게임 같은 것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자랑을 하고 난 뒤끝인지라,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 아비인 내게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기 위해 작업에 들어가 기술을 거는 과정인지라 대답하는 나또한 튼튼한 방어막을 치며 곧 있을 딸아이와의 일전에 대비했다.

“아이 아빠는... 나 진짜 많이 불쌍하단 말이야...”          
“도대체 왜 네가 불쌍한데? 왜 불쌍한지 말이나 한 번 해봐라”
“아빠! 나 오늘 학교에서 탐구생활 시험 봤는데 45점 받았단 말이야... 아빠 나 참 불쌍하지?”
으 으윽 오르는 혈압!!!
대학 시절을 제외하고는 내 평생을 다해 노력했어도 결코 받아본 적이 없는 환상의 점수 45점을 맞고서도 저리 태연하게 말하는 내 못난 여식!
그 소리를 듣고서도 저 아이를 한칼에 응징하지 못하다니, 구천에 계신 부모님 이 못난 자식을 부디 용서하소서!  


대개 이때쯤이면 방어막을 거두고 수세에서 공세로 잽싸게 전열을 바꾸어야만 한다. 한 집안의 위엄 있는 가장으로서, 싸납쟁이 아빠로서의 이미지를 잃지 않으려면….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다 싶어 목소리를 한 톤쯤 높여서 내가 되받아 쳤다.
“야 네가 왜 불쌍하냐? 널 열심히 가르쳐주신 너네 담임선생님이 불쌍하지... 45점 맞은 걸 죽도록 안 때리시다니... 참느라고 화병 나셨겠다. 아빠 초등학교 다니던 옛날 같으면 엉덩이 까고 열 다섯 대나 맞을 일이다. 어디 이유나 얘기해봐라! 응?”


“아빠 그래도 나 열심히 공부했구, 모르는 거 답 찾느라고 무척이나 힘들었단 말이야…….”
“야!! XXX 불쌍하기는 니 엄마하고 내가 진짜 불쌍하다. 너 같은 거 지금까지 키워주고 먹여주고 공부시켜준 것 생각하면…….”
“엄마 아빠가 뭐 불쌍해? 자기네들은 대문초등도 못 다녔으면서 뭐……. 시험은 백점이 제일 좋은 건데, 엄마, 아빠가 그 거 알아? 탐구생활 시험이나 본적 있어? 난 시험도 봤단 말이야, 아빠가 시험이나 쳐봤어?”       


내 딸아이는 해괴한 논리로 무장한 채 여전히 고집불통이다.
그래 매를 벌고 있군……. 피를 부르는 무력진압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야 XXX 이리 와봐! 네가 오면 다섯 대고, 내가 가면 열대야. 빨리 안 와?”
바로 이때 아내가 번개같이 끼어들어 사태 수습을 시작했다.
“아니 당신은 도대체 애들처럼 무슨 짓 이예요? 애가 알아듣도록 말로 이해를 시켜야지, 걸핏하면 손찌검이나 하려고 드니……. 당신도 철없기로는 은영이나 한 가지예요!”
식구에게 이런저런 잘못한 게 워낙 많은 나로서는 이쯤 되면 전면퇴각 상황이라 꼬리를 내릴 수밖에... 이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며 상념에 잠긴다.
‘이번 주말에는 태평동인가 성남동에 있다는 아기시장(baby market)에 가서 말 잘 듣고 밥 덜먹고 똑똑하고 이쁘게 생긴 여자아기랑 은영이를 바꾸어봐야지……. 그런데 누가 바꿔나 줄라나? 웃돈은 또 얼마나 달라고 할려나? 으휴…….’     

 

조영진

- 88년 서울치대 졸

- 대전 세창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