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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수필(797)>
여전사의 마음에 핀 인간애
용준희(인천 용치과의원 원장)

okchang@kornet.net 너무나 미숙하지만 치통너머에 있는 슬픔과 외로움과 절망과 상처에 대해 한번 더 보려고 애쓰고 있다. 거센 물보라 때문에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는다. 함께 진동하는 광음, 순간적으로 당황되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가늠해본다. 그래 이쯤이면 되겠지. 분명 여기에 있을거야. 또 다시 나타나는 방해물들 이 거대한 장벽, 힘들, 손이 저리고 팔이 아프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는데… 그렇게 매일 같이 전쟁을 해왔다. 난 용감한 여전사? 상대는 치아우식증 혹은 치석 혹은 움직이지 않는 치아...... 거대한 힘으로 압도하는 뺨을 제끼며, 언제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혀를 밀고서 침과 피가 입안에서 그리고 사람사이에서 매일처럼 용감함을 짜내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적들을 철퇴시키겠다고 나선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항상 너무도 짧았다. 하지만 이 모자라는 시간들이 패잔병들이 부활해서 거대한 적이 되어 압도하고, 결국은 참패해야하는 상황을 합리적으로 변명해 낼 수가 있을까? 나의 전의는 용맹하였지만 전략도 기술도 수준미달이었다. 그런 부족함을 인정하기가 힘들어 억지를 짜낸 적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던가. 그러니까 치과의사가 되어서 몇 년을 정신없이 지내면서 전쟁터에서 전의에 불타는 나를 만났다. 이건 정말 전쟁이야. 세균과의 전쟁이고, 치석과의 전쟁이고, 돈과의 전쟁이고, 기공소와의 전쟁이고, 재료상과의 전쟁이고, 환자와의 전쟁, 옆치과와의 전쟁, 간호사들과의 전쟁, 고정관념과의 전쟁이고, 전쟁 전쟁 전쟁...... 해야 할 전투는 날마다 늘어나고 아침마다 목표를 점검하고, 24시간 내내 싸웠다. 꿈속에서도 열심히 싸웠으므로 저녁이면 물먹은 스폰지처럼 피곤하게 처진 육체를 선물로 받았다. 의사를 시작할 때 사랑으로 살겠다던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일까?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보호본능만으로 가시막을 키워가는 나만이 커다랗게 보였다. 대학교 때 구강미생물학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입안에는 Dormal flora가 있다고, 사람의 몸은 멸균상태가 아니라고, 주인과 잘 조화를 이루던 세균들이 갑자기 균형을 깨고 증식될 때 주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질병이 되는 것이라고, 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각인 되었던 그 말들이 가슴속에서 떠오를 때 난 이미 많은 전투에서 패해 있었다. 환자들에게 전투적으로 선물했던 나의 분신들은 부서지고 탈이 나서 아프고, 달아나고 그렇게 절망이 되어서 한계로 되돌아왔다. 엄격하게 되돌아볼 때 내가 거둔 승리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조물주의 관대함과 인간의 위대한 자가 치유력과 환자의 인내속에 있었을 것인가. 적은 어디에 있고 무엇과 투쟁해야 할 것인가. 다 태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위치도 있을 것이었다. 나는 화해하고 싶어졌다. 그때쯤 누구에게 뭐라 이야기할 수 없는 엄마와의 이별이 준비되었다. S대병원에서 이제는 완치되었고 절대악성종양으로 발전되지 않는다는 엄마의 뇌종양이 수술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악성이 되어서 종양은 그대로 둔 채 수술장을 나와야했다. 그러나 엄마는 망설임없이 교수님이 권하는 모든 치료를 받으셨다. 후유증과 합병증은 모두 받아들이셨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처음부터 나를 알았고 치료했었으니 가장 잘 알고 계실거라고 그분을 믿는다고.... 이젠 엄마에게 물을 수도 없다. 그 마음의 지평을 선물한 이가 교수님인지, 福인지, 혹은 엄마자신인지, 다만 의사로서 환자와 함께 건너가야 할 곳이 우리들이 질병이라고 여기는 것, 고통이라고 여기는 것 그 너머까지임을 알게 하셨다. 의사로서 겪는 절망의 가운데 엄마가 있었고 거기에는 질병이나 고통이 망가뜨릴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결국 만나야 할 믿음과 사랑으로 함께 한 시간들이 있었다. 의사로서 많이 부족하고 인간으로서는 더 많이 부족한 내가 그렇게 조금씩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너무나 미숙하지만 치통너머에 있는 슬픔과 외로움과 절망과 상처에 대해 한번 더 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한다. 그렇지요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정말로 순간입니다. 제가 보내는 이마음 당신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다가가는 내마음입니다. 이 정도의 고통에 결코 쓰러질 수 없다는 희망의 노래입니다. 이렇게 당신의 피곤한 삶의 한자락에서 그치듯 고단함을 털어내고, 잠든 사랑과 희망을 깨우면 우리는 따스한 인연을 이루겠지요. 그리고 어느날 당신은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하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