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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하나님의 손(下)/김철위

하나님의 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사 41:10 -”


<1346호에 이어>
(5) 우리 모두 열심히, 열심히 일하고 점심을 포식한 터라 뜨거운 차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평소 커피를 즐기지 않는 저도 이날만은 밀려오는 피로를 쫓기 위해서도 마셔야 했습니다. 누구인가 큰 주전자에 끊는 물을 담어 왔습니다.


‘까가안 데 오르;에서 마닐라 행 국내선을 탔을 때 비행기의 작은 창가를 통해 본 활주로는 새벽에 비가 와서 인지, 섬이라서 그런지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창밖에서 눈물을 닦고 계신 ‘하나님의 손’이 보였습니다.
‘오천명을 먹이신 이적’을 너희들도 경험할 수 있었는데 너희들이 가져온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깔라만 지방 병원’에서 굶고 지쳐서 기다리고 있는 수백명을 먹일 수 있는데~ 하시며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였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 14:16, 눅 9:13) 는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제자들이‘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찾지 못했다면, 아니 소년이 바치지 않었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온 라면상자와 지구촌교회의 아나바다에 쌓여 있는 옷들이 보였습니다. 이것이 헐벗고 굶주린 이곳 주민들에게는 얼마나 소중 할찌를 … 끊는 물만 나누어 줄 수 있는 봉사자가 함께 하였다면 …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6) 50여년 전 이곳 젊은이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를 살리고 그들은 죽어 갔습니다. 사망 92명, 부상 299 명, 실종 57명 등 전상자 448 명. 이것은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 통일로에 있는‘필리핀군 참전비’에 새겨진 숫자입니다. 추모비에는 ‘필리핀군은 한국의 안전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1950년 9월 19일 참전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음. 이를 기리고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후손에게 그 뜻을 전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움’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들이 우리 땅에서 목숨을 잃지 않았다면 이 나라가 이토록 성장이 정지 되어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낯선 이 땅의 굶주리고 지친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자기들의 옷을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세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살아 날 수 있었습니다. 같이 온 젊은이들은 이곳 사람들은 그저 3D 직종에서만 일하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로만 보였을 것입니다. 악인, 아니 죄인 보다도 교만한 자를 싫어 하시는 하나님 (시 1:1) 은 이러한 우리를 어떻게 보실지? 빗방울이 초라한 필리핀 국내선 비행기의 차창을 계속 적시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미련함을 슬퍼 하시는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7)‘까미겐’에서 ‘까가얀 데 오로’로 이동하기 위하여 부두가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 ‘오늘이 구정이다’ 라는 말과 함께 갑자기 돗자리가 펴 졌고, 저와 김 장로님은 일행중 어르신(?)이란 이유로 억지로 세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기야 우리 일행 34명중 최연소자가 12살이니 저하고는 55년 차이가 나지요. 어린이부터 대학생, 청년들 그리고 장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세배를 하였습니다. 한 집사님은 제가 대학 때 스승이라는 이유로 온 가족이 함께 큰 절을 하였습니다. 52세인 산부인과 전문의인 팀장님 내외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30℃를 오르내리는 기후에 ‘구정’이 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 서 있던 이곳 주민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세배 돈을 주셔야지요!’ 라는 말을 누군가 하였습니다. 무료함을 달래는 해프닝이지만 그래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더욱이 이국땅 광야와 같은 벌판에서 받은 세배는 저로서는 그간의 피로를 씻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다음날 저녁, 공동비용에서 남은 것은 선교비로 드리는 순서가 있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