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술에 집중하다가도
내가 연주해 본 곡이 나오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짠 짠 짜안~" 브람스 교향곡 4번의 4악장을 마쳤다. 4악장까지 오기 험난한 고비를 수도없이 넘겼지만 이번에도 무사히 연주를 마쳤다. 비록 교향곡 마다 특징이 있고 제 나름대로 표현하는 게 각각이지만 마칠 땐 거의 비슷한 것 같다. 클라이막스를 향해 돌진하다가 모든 힘들 다 쏟아 마무리를 짓는 것이다. 전문 연주자가 아니니 방학 동안 내내 2∼3곡의 연주를 위해 지겹게 반복 연습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 번 무대에 서면 연주하는 게 서툴고 한번의 연주로 마치는 것이 늘 아쉬워서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온갖 노력과 정성을 한음 한음에 실어 연주한다.
지난 3월 19일 서울대치과대학 관현악단 봄 연주회를 마쳤다. 연주를 20회 이상하니 이제 몇 번 째 연주무대에 서는 건지, 몇 번째 해보는 교향곡 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30번은 연주무대에 선 것 같다. 교향곡도 이제는 두 번씩 해보는 것도 생기고 브람스 같이 전곡을 다해 본 경험도 가지게 됐다.
대학 들어와서 시작한 바이올린이 어느 덧 15년 동안 나와 같이 하고 있다. 시간은 15년이 흘렀지만 실력은 늘지 않으니 악기를 다루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노력과 시간을 많이 요하는지 절실히 깨닫는다. 후배들 보기에 미안하지 않으려고 병원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약음기를 껴서 연습하지만 매일 연습하자고 하는 나와의 약속은 수술과 논문, 실험, 회식 등으로 하루하루 미뤄지고 연주가 임박해서야 먼지 쌓인 악기를 꺼내기 일수다. 이번 연주도 사실 리허설도 늦어서 연주무대에서 연주 한 것이 처음으로 끝까지 다해본 것이다. 시간도 없고 피곤하고 악기연주도 잘 못하지만 뭐가 나를 연주무대로 이끄는 걸까?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도 하고 즐겁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는 매력이 있다. 내가 클래식 음악에 빠진 것도 이 모든 감정을 나에게 주기 때문이지 않을 까 생각해 본다. 나아가 듣는 것이 만족하지 한고 직접 연주를 하는 것은 더 큰 즐거움을 준다. 비록 그 연주가 잘하던 못하던 간에.. 교향곡 연습을 처음 시작 하면 오직 나의 바이올린 소리만 들린다. 다른 파트의 첼로나 비올라나 관악기가 어떻게 연주하던 간에 듣지 않고 오직 나만의 소리를 낸다. 마치 나만 옳으니 나를 따라 오라는 식으로.. 그러다 지휘자의 통제에 걸리게 되고 제제를 받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같은 파트의 바이올린, 첼로, 관악기의 소리를 듣게 된다. 순응을 하면서 이제 내가 언제 소리를 크게 내야 되고 언제는 솔로 악기들의 배경이 돼야 되는 지를 깨닫는다. 내가 조용히 소리를 내 줘야 더 좋은 음악이 될 때가 오는 것이다. 주위의 악기소리와 어울리게 되면 이제 음악의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게 된다. 작곡가의 의도를 알게 되고 이 곡을 작곡 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씩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음악이 전율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한 곡을 마스터 하게 되면 언제 들어도 이 곡은 잊혀 지지 않는 것이다.
수술장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음악으로 자주 충돌이 생긴다. 환자들은 의사가 수술을 하는 중에 음악 듣는다고 하면 어쩌면 그럴 수가 있냐고 화낼지도 모르지만 몇 시간 동안 수술장에서 수술하면 집도의를 빼면 지겨운 건 사실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자 하는 나에겐 수술장에 있는 모든 assist에게 적이 된다. 졸린다는 이유다. 하지만 나는 수술에 집중하다가도 내가 연주해본 곡이 나오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음을 계속 흥얼거리면서 수술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즐거움인 것이다.
회식자리에서 술이 거나하게 되서 인턴들에게 불만사항이 있으면 말을 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한 인턴이 일어나서 하는 말 “점심 먹고 한시 지난 후 클래식은 못 참겠어요" 음악으로 인턴까지 괴롭혔으니 미안하지만 난 나의 클래식 음악을 사랑한다.
안 강 민
·96년 서울치대 졸
·현) 서울대 치과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