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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8)못할 말/조광현

 

월정 보수에다 인생공부를 더하여
준다는 생각으로 잔소리를
해 댄 것이 당사자는 몹시도…


벌써 20여년이 흘렀나 보다.
내가 조그마한 개인 치과의원을 할 때의 얘기니까….
우리 치과에는 김양 이라는 간호조무사를 한명 채용해서 썼었는데 얼마간 잘 근무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루는 퇴직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 때만 해도 구인난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 나는 언제나 해직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다소 불편 하더라도 즉시 소원을 들어 주는 성격이라 쾌히 승낙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일을 곧 잘 하던 김양이 갑자기 그만 둔다 하니 하도 어이가 없어 난감하긴 했지만 다음에 올 또 다른 사람을 위하여 참고나 하려고 왜 우리 치과의원을 그만 두는지 이유나 좀 들어 보자고 하였다.


이왕 그만 두는 마당에 그만 두는 이유를 바로 말해 주어야 다음에 여기 올 다른 사람한테는 같은 이유로 그만두는 일이 없게 할 것 아니냐고 하면서 애원을 하다시피 물었다.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고 사정을 해도 아무런 말을 안 하다가 나가면서 문 앞에서 하는 말이 “선생님은 좋으시겠어요... 하고 싶은 말을 언제고 하실 수가 있으시니..." 하고 나가 버렸다.
그 당시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단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참아 왔었구나... 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그 뒤 몇 십 년이 흘러 이제 나는 치과의원도 때려치우고 백수 빈 털털이로 지내 온지도 십년이 넘어서야 그때 김양이 한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 치과에 환자도 별로 없고 수입도 신통치 않아 보수를 넉넉하게 주지 못 하는 것이 미안해서 앞으로의 인생길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었다.
말하자면 월정 보수에다 인생 공부를 얹어 준다는 생각으로 잔소리를 해 댄 것이 당사자는 몹시도 듣기에 거북했던 모양이다.


자기 잘 되라고 하는 말도 듣기 싫은데 그저 그런 말이나 듣기에 거북한 말이야 불문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나이가 먹어 이제 죽을 일만 남은 나에게도 못 할 말이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울러 더 많은 나의 경험들을 자손이나 이웃들에게 알려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무슨 비밀스런 얘기도 아니고 창피한 얘기도 아닌데도 차마 말 못 할 얘기들이 있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죽는 마당에 아무 두려울 것도 없고 체면 깎일 일도 무섭지 않은 데도 말 못할 말들이 있는 것이다.


내가 정한 우리 집 가훈이 ‘남의 경험을 사라" 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많은 일들을 몸소 체험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간과 돈을 절약하려면 남의 경험을 경청하여 내 경험처럼 체득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그런 내가 내 아들 딸, 손자 손녀들에게 할 수 없는 말들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이 세상에는 못할 말들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비근한 얘기로 나는 내가 정한 ‘성공의 비결" 이 있는데 그 대로만 실천하면 틀림없이 성공을 할 수 있겠는데도 그것을 우리 자손들에게도 다 말 해 줄 수가 없는 것들이 있다.
왜냐 하면 ‘그런 것을 잘 아는 너는 성공했느냐?" 하면 할 말이 없고 설사 친절하게 잘 일러 준다 해도 듣는 사람이 그것을 실천할까도 의심되기 때문이다.


유명 인사나 거물급 인사가 아니라도 할 말, 못 할 말이 따로 있는가 보다.
그래서 나의 모든 지식들을 후학이나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남겨 주고 가고픈 내 인생의 진로도 부득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제대로 바른 말을 못해 역사가 왜곡되고 바로 알지 못한 채 묻혀 버린 그런 큰 일들도 많은데 시시콜콜한 보통 사람들의 사소한 일 쯤이야 그냥 없었던 것으로 한들 대수랴 싶기도 하다.


이 세상에 할 말 다 하고 죽는 사람도 극히 드믈 것 같다.
바른 말을 못 들어 무수히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만 하다 헛되이 죽어가는 생명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듣는 이들의 무지로 인해 역시 나도 못 할 말은 못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