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정상인 우리도
언제 어느때 장애인이 될지 모르고
장애인 자신이 무슨 큰죄를 짓고…
내가 컴퓨터를 어느정도 스스로 익히고 나니 다소 심심하던 차에 어찌 어찌 하다가 삼행시 모임이 있어 가입하게 되었다.
내딴에는 내가 나이는 좀 먹었어도 글짓기 실력 만큼은 아직 젊은이들 못지 않다는 자부심도 있고 외계어가 판치는 컴퓨터 세계에서 국어 순화운동에 조금이라도 이바지 해 보려는 잠재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에서 말하는 소위 카페라는 곳인데 가입된 회원 대부분이 젊은이 들이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젊고 패기에 넘치는 기상이 보기에 썩 좋았다.
카페 주인이 그날 그날 아침에 주제를 내어 주는데 예를 들면 ‘고구마" 하면 회원들이 돌려 가면서
고-- 고려자기는
구-- 구수한 맛이 있어
마-- 마치 우리 고유의 숭늉같은 맛이 난다.
이런 식으로 지으면 읽은 사람들이 간단한 평도 하고 칭찬도 하고 더 멋진 삼행시도 지어서 올리는 싸이트였다.
하루 하루 맛을 들여 가며 삼행시를 짓다 보니 글짓기 솜씨도 늘고 인터넷 상으로나마 많은 사람들을 사귈수 있어서 좋았다.
회원중에는 중고생, 대학생, 직장인, 요즘 흔히 말하는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나?) 등 각계 각층을 망라하고 있었다.
어떤 젊은이들은 혹시 이성친구라도 사귀어 볼까하고 가입한 속내가 빤히 보이는 사람도 있고 맞춤법도 엉망인 주제에 저만 잘난체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도 있었다.
특히 한심한 것은 직장인이나 공무원이 자기 본연의 업무는 언제 하는지 온종일 삼행시에만 매달려 사는 사람이 있어 보기에 영 안좋았다.
사장이 주는 월급이나 우리의 세금으로 지출되는 공무원 월급이 얼마나 아까운지 말은 못하고 그저 속이 탈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루는 삼행시 시제가 ‘벙어리"로 나와서 나는 거기에다 이 시제만큼은 도저히 삼행시를 지을수 없다고 써 놓았다.
왜냐 하면 시를 짓고 희희덕 거리는 정상인은 좋을지 몰라도 적어도 장애인 협회에 관여하고 있는 나(나는 장애인이 아님)는 그런 시제로는 양심상 시를 지을수 없다는 뜻에서 못 짓겠다고 썼다.
그랬더니 조금 후에 어떤 공무원이 시를 안지으면 그만이니 못 짓겠다고 거기에 쓰는것은 카페 주인에 대한 대단한 결례라며 즉시 삭제하고 사과 하라는 경고성 메세지가 뜨는게 아닌가?
나는 다시 우리가 삼행시를 지으며 인터넷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온몸이 정상인 우리도 언제 어느때 장애인이 될지도 모르고 또 장애인 자신이 무슨 큰 죄를 짓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들을 가슴아프게 해서는 쓰겠느냐며 좋은 말로 타일렀더니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한테 대어드는것이 아닌가?
아무리 내 말을 이해시키려 해도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기에 나는 그 사람을 근무 시간에 공무를 이탈하고 딴짓을 한 과오를 고발 하려다가 모든 것이 번거로워 내가 그 카페 회원가입을 탈퇴하고 말았다.
무엇이 무서워서 피한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긴 했지만 몇년을 두고 찜찜하기만 하다.
어마어마하게 잘못 돌아가는 우리의 도덕성과 인간성을 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