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주는 환자가 있고
아내와 엄마로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
“간호원 말고 원장없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개업 초창기에 5, 60대 환자들에게서 종종 들었던 말이었다.
‘아줌마…’ 운운은 지금도 가끔씩은 듣는 말이고….(듣는 상황에 따라 뉘앙스는 완전 다르다.)
치과 진료가 ‘의료 서비스 업’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딱 히 ‘존경’을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높은 dental IQ로 우기는 환자들에게 화가 나면 정말 남자라면 드잡이질이라도 하고픈 날도 있고, 어떤 날엔 정말 이 지긋지긋한 ‘치과의사질’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제는 환자와의 trouble을 피해가는 것을 터득하였고 얼굴만 봐도 점쟁이를 할 만큼 분위기 파악도 제법 할 줄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비단 여자치과의사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처음 ‘창원’에 왔을 때 여선생 단독 개원이 다른 지방보다 무척 적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곳으로 이전하여 나만의 진료공간을 열었을 때 여자가 그것도 젊은 여자가 원장이라는 사실에 대한 환자들의 놀라움과 ‘불신’은 힘든 치과 일을 더욱 힘들게 했다. 분명 대학 졸업 동기 중 1/3이 여자였는데….
그들 모두 이러한 편견에 힘들어 할 것이라는 짐작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나이지만 무언가 사명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또 여자원장이여서 잘 봐줄 것이라는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믿음에 온 동네 malignancy 소아 환자를 모두 데리고 오는 보호자들이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직원들조차도 남자 원장님이라면 시키지 않아도 척척 할 일들을 ‘같은 여자’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order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는 정말 여자의 가장 큰 적은 남자가 아닌 여자임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한가지 어렵다기보다는 난감한 부분이 같은 치과동료들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어차피 전문 직업인으로 나선 이상 능력이 되는 한 최선의 진료를 하고 싶은 욕심이다.
그런 나의 노력이 ‘그 여자원장 똑똑하고 욕심이 많다’ 라는 결코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들을 들을 때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사실 ‘여자치과의사’로 살아오면서 가장 어렵고 미안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다.
아내로서 한없이 부족한 나를(정말이다) ‘아내’가 아닌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변함없이 도와주고 격려해 주는 남편이 고마울 뿐이다.
사남매의 장남인 남편은 결혼하기 전 왕자로 살아오다가 나를 만난 후 돌쇠가 되어 버렸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왕자다.(쑥쓰~~~)
그리고 예쁜 두 딸들….
아침 출근 때마다 가지 말라고 붙잡는 둘째, 벌써 훌쩍 자라서 나보다 아빠를 챙겨주는 첫째….
자랄수록 엄마의 자리는 커져가고 치과의사로서의 의무와 책임도 따라 커져가는데 정말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이 나라에서 ‘여자치과의사’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를 신뢰하고 찾아 주는 환자가 있고, 나를 똑똑한 여자가 아닌 열심히 하는 ‘동료’로 생각해주는 주변 선생님들이 계시고, 무엇보다 나를 아내와 엄마로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
임 서 예
·93년 조선치대 졸
·동현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