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등 자연을 벗삼아
100KM를 뛰다가 걷다가
완주하니 기쁨과 감격이…
듣던 대로 ‘몽고 Sunrise to Sunset 100km 마라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깨끗한 자연을 접하게 했다. 몽고북부 Hovsgol 호수가 있는 Toilogt에서 개최되었다. 참가자는 약 50명 정도로 영국, 미국,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고, 한국인으로는 우리 부부가 유일하였다.
마라톤을 하는 날, 새벽 3시에 기상하여 식사 후 4시30분에 출발하였다. 새벽 기온은 영상 2도로 추운 겨울날씨와 같았다. 응급물품과 물 1.5 리터가 든 약3kg의 가방을 메고 뛰어야 했다.
대부분의 길은 늪지대, 자갈로 덮인 길, 산이었고 나무나 돌에 표시해 둔 초록색 페인트 표시를 찾아 달렸다. 평탄한 길에서만 연습한 나로서는 적응이 어려웠다. 오른쪽 발목에 특히 긴장이 심해져 약 10km 달린 후에는 발목에 통증이 느껴져 걱정이 되었다.
처음 42km 구간에서는 산을 두개 넘어야 했다. 2300m 고도의 산정상에 도달하는데 걷고 뛰었다. 숨이 목까지 찼다. 늪지대에서 찬이슬로 운동화가 젖어 발이 시려왔다. 42km지점에 5시간 30분만에 들어왔다. 나의 이전기록 3시간 15분과 비교하면 형편없었지만 지형과 무거운 짐을 감안하면 좋은 기록이었다.
그러나 계속하여 100km를 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통증이 생긴 발목이 걱정이 되고, 힘이 소진된 상태여서 42km 뛴 것으로 만족할 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운동화와 옷을 새로 갈아입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응원을 뒤로 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길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단조로웠다.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단조로움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다시 2000m 고지의 산길이 시작되었다. 기운이 없는 상태라 거의 걸어 정상에 오르니 별천지가 펼쳐졌다.
확 트인 초원은 메뚜기 천지였다. 내가 달리면 주변의 수 많은 메뚜기들이 함께 날았다. 65km지점 급수대에 9시간만에 도달하였다. 12시간 제한시간보다 상당히 빨리 와 남은 거리를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다시 초원을 달렸는데 불규칙한 바닥이 많아 발목을 다칠까 바 신경이 많이 쓰였다.
또 고도 1800m 산길이 시작되었다. 지친 몸으로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소나기까지 내렸다. 지친 몸이지만 소풍 온 기분으로 걸었다. 구름이 물러가고 햇빛이 왔다. 왼쪽에 펼쳐진 호수는 원시시대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하얀 자갈의 강변, 바닥이 훤히 보이는 호수, 인기척에 놀라 함께 비상하는 물오리 떼….
다리는 굳어져 나무토막 같았지만 100km 완주의 기쁨을 생각하며 걷다가 뛰다가 하였다. 결승점이 보이면서 여러 사람의 환호가 들렸다. 도착하니 기쁨과 감격으로 가슴이 벅찼다.
저녁 7시30분, 제한시간 18시간보다 빠른 15시간 5분만에 들어왔다. 결국 대회 이름처럼 해뜰 때부터 해질때까지 뛴 것이다. 고통이 끝나고 마시는 물은 천국의 맛이었다. 22명의 100km 완주자들 중 8번째로 들어왔다.
이제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의 맘에는 고통의 기억은 사라지고 산, 꽃, 나무, 하늘, 구름, 호수들로 어우러진 태고의 아름다움과 인생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는 기쁨이 남아있다. 마라톤은 나의 인생에 고귀한 선물인 것 같다.
최병호
- 82년 연세치대 졸
- 현)연세치대 구강악안면외과 교수(원주 기독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