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강산에서
태어난게 고맙고
마음대로 오갈수 없어
원통하다
-둘째 날
김주석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 김구 등이 참가한 남북연석회의가 열렸던 쑥섬, 주체사상탑 관람 - 옥류관에서 냉면 - 개선문 - 지하철 시승 등을 거쳐 학생소년궁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수없이 많은 방들이 있었는데 유치원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5천여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특기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교육기관으로 보였다.
수많은 방들중 몇군데 밖에 돌아볼 시간이 없었는데 컴퓨터, 자수, 바둑, 서양화, 체조, 피아노, 다이빙시설이 갖춰진 수영장 등에서 한명의 선생이 열명이내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영재교육 혹은 특기교육처럼 보인다.
·느낌하나 - 미술실에서
우리가 학교 미술공부시간이나 혹은 미술학원에서 보았던 석고상들 - 줄리앙, 비너스, 아그립빠 같은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우리 이웃들 - 아저씨, 아줌마, 노인, 젊은이 - 그냥 흔하게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인물들을 석고상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보며 소묘공부를 하고 있었다.
평소 왜 우리는 서양의 미남 미녀 석고상을 그리며 미술공부를 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갖고 있던 터에 이 풍경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느낌 둘 - 가야금 방에서
열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넷이 가야금 합주를 능숙하게 연주하고 있다. 네쌍둥이란다. 그리고 그 방을 나서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나에게 딸 네쌍둥이가 있고, 넷 딸 모두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졸라대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파산할 게 뻔하니까.
·느낌 셋 - 공연장에서
학생들의 교육내용을 종합해놓은 듯한 공연을 잘 만들어진 극장에서 관람했다. 체조, 춤, 노래, 교예 등 온갖 요소를 잘 배합해서 두시간 길이로 연출한 총체극 형식의 공연이었다.
이번 여행중에 이곳 학생소년궁전의 청소년들이 주축이되어 벌인 공연 외에 연회장, 식당 등에서 몇차례 공연을 보았는데, 가극, 연극, 영화 등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감상을 말할 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느낀 것을 말하자면 대강 이렇게 요약이 될 듯하다.
우선 무엇보다도 출연자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부터 재능있는 아이들을 뽑아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학생소년궁전을 보면 짐작이 가는 일이다. 또 하나는 ‘우리 것’ 찾기, 만들기에 열심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것’이란 말을 거칠게 표현하자면 ‘동양적인 것’ ‘한반도적인 것’ ‘한민족적인 것’을 내포하는 ‘어떤 것’인데 악기나 선율, 혹은 몸짓 등에서 ‘우리 것’의 정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느꼈다.
줄넘기놀이나 씨름을 춤으로 안무해놓은 작품이 좋은예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저렇게 뛰어난 기량을 가진 배우와 한치의 오차도 없는 무대전환과 역동적인 연출을 보면서 나는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내용이 너무 단선적이라는 느낌. 주제를 쉽게, 알아듣기 좋게 전달하려고만 하는데서 오는 단순함, 혹은 주체와 수령에게로 일직선으로 수렴시키려는 논리의 비약, 억지, 터무니 없는 낙관, 절대자에게 바치는 꽃다발, 그 꽃다발의 덧없음. 공연이 끝나고 박수치고 나올 때의 무언가 미진한 느낌. 가슴 한쪽이 아직도 덜 찬, 감동이 아닌 스펙타클의 파노라마, 곡마단의 줄타기 소녀, 그 묘기보다 줄타는 소녀의 인생과 고단함에 더 관심이 쏠리는 이 어이없는 관람의 이탈, 혹은 싸구려 감상.
어쨌든 복잡해진 머리통을 들고 고려호텔로 돌아와 백두산 영지술, 장뇌산삼술, 황구렁술, 왕찔광이술, 보가지술, 백두산 들쭉술, 금강산 돌버섯술로 머릿속을 씻어냈다. 시인 신경림, 이시영, 소설가 황석영, 현기영, 이경자, 송기숙, 평론가 최원식 등과 함께.
-셋째·넷째 날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삼지연으로 이동, 그곳에서 자고 다음 날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