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마흔 아이가
세월이 우릴 미혹하였구나
지명·이순·종심·백수까지
유쾌하게 살아보자
아침, 저녁으론 벌써 쌀쌀하다. 토요일 오후, 문득 Ju 원장이 생각난다.
지난해, 이맘 때 쯤 이었던가…. 어느 토요일, 대구로 가던 길에 Ju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냥 전화를 했다며,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는 등의 통상적인 안부 뒤로, 대구에 간다는 나의 말을 낚듯이 채어 받아 저녁에 ‘퍼’ 모임을 하자는거였다. 자기가 Y, L, J에게까지 다 연락하겠다며, 약속 잡으면 다시 전화한다며 재빨리 통화를 끊어 버렸다. 보통 친구끼리의 일상적인 통화 내용이었지만, 내가 아는 Ju는 절대, 안부 정도로는 전화를 걸지 않는다. 더욱이 자기가 먼저 나서서, 약속을 잡지는 않는다. 우리 모임에서 그런 일들은 항상 모임의 회장인 Y 혹은, 酒를 좋아하는 J의 몫이었다. 대학 시절, 우리는 몇 해를 지내면서 친구가 되었다. 각자의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들도 제각각이라 입학 후, 4년이 지나서야 지금의 모임이 되었다.
Ju는 매번 모임 때마다 늦는다. 그냥 늦는 것이 아니라, 약속 한 시간 뒤에 확인 전화를 해보면 아직 집이란다. 졸업 후, 우리가 처음으로 2박 3일간의 휴가를 계획하고, 출발지인 학교에 아침 일찍 모였을 때, 차량 제공자인 Ju의 상습적인 지각으로 인하여, 반나절을 허비하고 늦은 오후가 되어 여행을 떠난 기억도 있다.
어느 모임 날, 가장 늦게 나온 사람이 그 날 먹은 경비를 내게 되고부터, 다음 모임에서 우리는 먼저 나와 얌전히 기다리는 Ju를 보았다. 음, 무서운 순발력의 Ju!! 그런 Ju의 연락이라….
대구에 도착할 무렵, 모두 다 나온다고, 늦지 말라고 Ju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무슨일 일까? 지난번 얘기 나왔던 병원이전 문제이거나, 유학이라도 간다는 걸까? 혹시 집안에….
이런저런 생각들로 약속장소에 도착해 보니, Ju의 연락이 이례적이긴 했나보다.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씩 미뤄왔던 모임이었는데, 내가 꼴찌다. 이 놈들 엄청 먹는데, 불쌍한 내 용돈. 그래도 만나면 늘 반가운 얼굴들이다.
오늘도 일등으로 왔을까? 맏형 같은 L, 빈틈없고 치밀해서 종신직 회장이 확실한 Y, 선글래스가 가장 안 어울리는 유학파 J, 그리고 우리에게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주접 Ju가 있다. 즐거운 만남이다.
자리에 앉으며 걱정 반, 기대 반으로 Ju의 안색을 살핀다. 다른 녀석들도 궁금한 표정들이 역력하다.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본다. “무슨 일이고?” 몇 번씩 물어봐도, 그저 건성으로 대답하곤 화제를 돌린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한 참을 지난 뒤에야 Ju는 쑥스러운 듯 말문을 열었다. “으응~~~ 별건 아니고, 그냥 다들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하고, 졸업한지도 꽤 되었고, 우리 내년이면 마흔 아이가, 맞제?”
그랬구나. 어느덧 우리도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아이들의 아빠가 되고, 중년의 의사가 되었구나. 그 동안 우리들 같이 웃고 울고, 말들도 많았지. 孔子가 말했다지 ‘마흔 살에는 모든 것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그래, Ju!! 세월이 너를 미혹하였구나. 한바탕 크게 웃고, “술 퍼!!” 오늘 한번 불새가 되어보자. (학창시절 동기들은 우리를 독수리 오형제라 불렀다.) 그리고 다가오는 知命, 耳順, 從心, 白壽까지 유쾌하게 살아보자.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