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포기하는 우리의 권리는
더 크고 세찬 돌풍이 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조무사의 방사선 촬영이나 스켈링으로 인한 문제는 오래된 우리의 아킬레스건이다. 근무조건이 열악한 곳의 취업을 기피하는 위생사들의 지역적 편재가 문제로 대두된 지도 오래이고, 최근 불거지기 시작한 위생사의 파노라마 촬영 시비도 앞으로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해결책은 없는가. 해결책이 없다면 대안조차도 없는가. 상대적으로 비싼 임금을 받고 위생사입네 목에 힘을 주면서도, 성실하지도 책임감이 있지도 심지어는 스탠다드 엑스레이 촬영조차 조무사보다 못한 위생사보다는 근면하고 험한 일에 몸사리지 않는 조무사들에 더 애정이 간다는 사람들이 많다.
파노라마를 찍을 때마다 의사가 진료를 멈추고 방사선실을 드나들 수도, 그렇다고 해서 고액의 연봉을 줘야 하는 방사선 기사를 개인의원마다 고용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가. 법이란 현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웠건만, 약자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법안들은 무엇에 기인한 것인가. 혹 우리의 현실을 우리의 대표자들께서 입법자들에게 전혀 인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소위 로비능력 때문은 아닌지….‘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로비는 전문가에게’라는데….
치과의사를 일러 어떤 이는 정글 속을 배회하는 살찐 양이라 한다. 누구든 먼저 잡아먹으면 되는 정글 속의 양. 뜯기고 먹히며 한편에선 바보 같다는 놀림을 받고 또 한편에서는 그렇게 살이 찌도록 혼자 욕심껏 먹어댔으니 잡혀 먹혀도 싸단 시기 어린 시선을 받는다.
치과의사들에게 빌린 돈은 안 갚아도 되고, 치료를 잘 받은 후엔 문제가 있는 것처럼 트집을 잡고 마구 우기면 남은 치료비를 안내도 된다고, 상대만 잘 만나면 오히려 돈을 뜯어낼 수도 있다고까지 공공연히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가진 자에 대한 갖지 못한 자의 이유 없는 증오가 팽배한 사회, 의료인의 양심이 확대 해석되는 시대에서, 존경받는 보편적 의료인으로서 치과의사의 사회적 위상은 이제 지나간 시절의 추억이 되었다.
의식하고 있건 아니건 간에 나는 우리 치과의사가 오늘날, 사회적으로 절대약자의 입장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인의 양심, 집단이기주의라는 단어들은 어느새 체면치레를 해야하는 우리에게 손발을 묶는 멍에가 되었고 경기침체와 더불어 오는 경영압박도 이제 몇몇 소수의 일이 아니다. 조직은 어차피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고 피해를 방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수 있고 양심을 거스르지 않는 한 그것은 정당하다. 1인칭의 우리가 양심적이라면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조직이 추구하는 이익의 또 다른 3인칭 이름일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며, 두드리는 대로 맞고 맞는 매에 적응하는 일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당연한 일로 매를 맞더라도 아플 땐 아픈 척하고, 억울할 땐 억울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며 자신을 주장해야 한다. 힘든 일을 겪는 동료가 있다면 마음을 모아 도와야 하고 예산이 부족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을 집행부가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쌈짓돈이라도 털어내야 한다. 귀찮아서, 두려워서, 막연히 누군가 해 줄 것이라 믿고 우리가 미루고 포기하는 우리의 권리는 더 크고 세찬 돌풍이 되어 돌아와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경기침체라는 거대한 해일 속에서, 행정기관은 행정기관대로, 환자는 환자대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구닥다리 의료법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목을 죄어 오고 있는데, 맹수가 포효하는 밀림 속을 배회하는 살찐 양들은 어리석게도 아직도 자신이 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사고의 반전이 필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우리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