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흐르는 청계천처럼
‘증오의 오염’을 걷어내어
‘신뢰와 사랑’이 흐르게…
구릿빛 피부에 형형한 눈빛, 깡마르면서도 다부진 체격…. 선친과 함께 임치과 4층에서 정각도(正覺道) 보급을 시작하던 70년대 청산거사(靑山居士) 모습이다.
입에 로프를 물고 버스를 끄는 차력시범 전날에는 꼭 구강검사를 받는데 잇속이 무척 깨끗하고 튼튼하였다. 두어 해에 한번은 재충전을 위하여 자신의 사부(師父) 청운거사를 찾아간다. 십리 밖에서부터 “물렀거라! 송장 썩는 냄새가 난다!”고 불호령이 떨어지면, 속세의 때(?)가 빠질 때까지 열흘이고 한달이고 경내에 들이지를 않는단다. 육식(肉食)금기를 깨뜨렸다는 나무람이다. 어머님이 차리신 음식에 들어간 멸치국물 한 방울의 오염(?)도 스승은 귀신같이 찾아낸다는 것이다.
NHK TV 초청으로 일본에 몇 차례 들나들더니, 이내 서울로 도장(道場)을 옮겼다. 소문으로는 언젠가 예의 스승 찾기로 입산한 뒤 종적이 묘연하다고 한다.
사제(師弟)가 더 높은 도를 닦으려고 오염과 인적(人跡)을 피하여 더 깊은 산중으로 은거한 것인지, 아니면 함께 우화등선(羽化登仙)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뒤로 청산의 직계 제자를 자처하는 분들이 부쩍 늘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옛사람들은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한데 인걸(人傑)은 간 곳 없다”고 읊었다. 유장한 자연에 비하여 짧고 덧없는 인생을 한탄한 노래다. 갑자기 천지개벽이 일어나, 넓은 들 높은 산이 석 달 만에 평지가 되고 삼년 안에 빌딩 숲으로 변한다.
공산당이 싫어 월남한 아바이 에미나이가 아니더라도, 이젠 전 국민이 실향민(失鄕民)이 되었다. 고향은 그저 연례행사로 찾는 귀소본능의 종착역만이 아니다.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훈훈하고 마음 든든하다. 지금은 가버린 친척과 벗들을 회상하며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뿌리요, 굳게 디딘 발판이다. 공유하는 사람끼리의 공통분모요, 따라서 자기 인생에 핵심 부품중의 하나다. 그것이 이제는 사람보다도 먼저 고향산천이 덧없이 사라지는 세상이 되었다.
모두가 이방인이요, 드난살이로 떠도는 뿌리 없는 외톨이며, 돌아갈 곳 없는 정신적인 홈리스다. 사람들의 심성은 성급, 각박해지고 인간과 인간 사이는 공통분모을 잃고 토막이 나서, ‘이웃’이라는 어휘도 낯설어지는 세태다.
짐승이라고 다를까.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아가려면 반경 몇 백리의 울창한 숲이 있어야 한다. 서식하고 번식할 공간, 무엇보다도 먹이가 될 작은 동물들의 개체수가 유지되어야하니까…. 개발의 이름으로 마구 파헤치면서, 일말의 죄의식을 가리려고 겉치레로 남겨둔 알량한 국립공원…. 그마저 종횡으로 뻗은 아스팔트로 토막이 나서, 맹수는 고사하고 올망졸망한 작은 동물들마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남은 것은 삶이 박제(剝製)화 된 우리 속의 동물뿐이다. 가축을 기르고 물고기를 양식하더니 야생동물 마저 동물원 사육으로 대를 이어가니, 다음은 인간 차례인가?
이념과잉의 계급투쟁이 걸어간 길과 그 종말을 우리는 멀지 않은 과거에 목격하였다. 이념을 덧칠하여 계급갈등을 부풀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갈라 토막 낸 ‘인간사육’의 창시자 스탈린은 인류역사에 훌륭한 반면교사였다. 존경받던 어른들이 터무니없는 처형을 당하고, 맹수가 사라지듯 수많은 청산과 청운이 실종된다.
어른과 거장(巨匠)이 없는 사회, 정권교체가 원천봉쇄된 극단적 전체주의체제는 인간을 동물, 그것도 박제화 된 짐승수준으로 끌어내린다는 생생한 체험이었다.
평등주의의 기치(旗幟)는 아름답지만, 증오의 이념이 주 엔진이었기에, 폐쇄된 강압사회를 거쳐 끝내 수용소군도로 전락한다. 긴 세월 신음하던 재소자들은 개방이후 수용소가 인간사회로 복원(復元)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심한 진통을 겪는다.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한 청계천 복원이 실현되었다. 정답이 다 나와 있는 길을 “그까이꺼” 왜 되찾지 못할까. 사람을 사육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짐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