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모가
자식의 울부짖음에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팔 잡고, 다리 잡고”
“으-허 악”
“이거만 맞으면 괜찮다”
“윽 으-허, 으-허 ”
“예야 오늘 왜 그래”
장애인진료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전쟁을 각오하고 환자를 맞이하게 된다. 선천성심질환이나 신부전, 경련성 질환 등 협조가 그럭저럭 되는 환자들도 있지만, 치과치료를 위해 전신마취가 필요한 장애인 환자들의 대부분은 고도의 정신지체나 자폐증 환자들이다.
필자의 병원에는 전신마취를 시행하고 당일 퇴원이 가능한 장애인진료실이 갖추어져 있는데, 보통 아침 9시부터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게 된다. 예약 장부를 확인하고 오늘의 마취계획을 생각하면서 진료실로 내려오다 보면, 멀리 앉아 있는 환자의 얼굴과 마주 친다. 그 순간, 오늘도 전쟁은 피할 수 없겠구나.
전신마취라는 것이 환자의 의식을 없애고 보호반사기능을 억제하는 아주 위험한 과정이라서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장애인진료실은 뭔가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가 마취에 협조를 해주어야 하는 데, 유니트체어에 앉히는 것 뿐만 아니라, 진료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이 있다. 하물며, 정맥마취제를 투여하기 위해 수액용 주사를 놓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
보호자가 환자를 감싸 안고, 필자는 주사바늘이 환자에게 보이지 않도록 감추면서 갖은 방법을 이용하여 주사를 놓으려고 애를 쓴다. 얼르고 달래고 해서 팔에 수액용 주사를 놓을 수 있으면 운이 좋은 날이다. 하지만 주사바늘이 피부를 찌르는 순간, 환자는 갑자기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고 심지어 폭행을 하기시작하면 난감해진다. 몸무게라도 적게 나가면 몇 명이서 붙잡고 흡입마취제로 직접 마취를 하기라도 하겠지만, 몸무게가 100kg 가까이 나가는 자폐증 환자는 거의 속수무책이다. 바로 현관문 밖으로 뛰어나가 도망가 버리기도 한다. 그 다음부터는 가까이 가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경비아저씨, 보호자와 함께 겨우 붙잡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환자의 어깨에 ketamine 근육주사를 놓는 것은 거의 전쟁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 없다. 주사를 맞고 난 후 5분정도 지나면 잠이 들기 시작하는 데, 환자를 가만히 붙잡아 둘 수 없기 때문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퍽 하고 쓰러질까봐 또 겁이 난다. 겨우 졸음이 오는 환자를 잡아 진료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유니트체어에 앉히고, 마취가스로 마취를 하여 의식을 잃고 조용해지면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몸에 심전도, 맥박산소포화도 등을 붙이고 기관내삽관을 해서 마취유도를 마치고 나면 등이 땀에 흠뻑 젖어 있다. 무심코 고개를 들면 필자를 바라보고 있는 환자보호자, 주치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항상 떠오르는 질문이다. 우리는 방금 무엇을 했는가? 보호자의 얼굴을 보기가 미안해지는 것은 아직도 어쩔 수가 없다. 어느 부모가 자식의 울부짖음을 바라보고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그래도 부모의 눈은 우리 자식 그저 치료만이라도 잘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눈빛들이다. 마음 한곳에서는 이보다 조금 부드럽게 마취할 수 없었을까 죄책감이 떠오른다. 그래서 더 쳐다보기가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저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방법으로 마취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할 뿐이다.
서 광 석
·96년 부산의대 졸
·1997~2001년 서울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현) 서울대학교치과병원 치과마취과 전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