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갑’이 아닌
진정한 갑족이 되기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는지…
새로 이사온 아파트의 이웃들과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한달에 한번 세 부부가 만나 저녁식사와 세상살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직업과 취향이 제각각이지만 같은 신앙(가톨릭)이어서 편안한 만남이다.
또 솔직하면서도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므로 대화를 즐기게 된다.
무릇 작은 모임일지라도 분위기메이커가 있기 마련인데 바로 최 사장님이 바로 그러하다. 이 분은 친동생이 개원한 치과의사여서, 치과계(?)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있으신 분이다. 그 분이 말씀하신 내용을 갑론을박론(?)으로 정리해 보았다.
치과의사를 포함한 의사, 판, 검사등 소위 ‘사’자 직업을 가진 그룹을 ‘갑’이라 하고, 여타(?) 직업 및 환자 등을 ‘을’이라 한다.
갑은 안정된 직업으로 경제력을 지닌다. 또 사회적 인정과 존중도 쉽게 얻어, 기득권을 누리며 당연시 한다. 대접받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 게다가 의사들은 진료실에서 더욱 더 강자가 된다. 갑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 보고, 우월감을 가진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으며, 그 누구도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가 없다.
드디어 갑도 와병이나 은퇴를 통해 을의 입장으로 바뀐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당황한 갑은 불평을 한다. 가족들에게 갑으로의 대우를 강요하며 왕년과 소싯적 때를 노래하는 것이다.
을도 갑처럼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을로서는 을의 입장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만큼 당황하지 않고, 변화되는 처지를 비교적 잘 수용한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무료나 실비로 운영되는 고궁에 가서 다른 분과 쉽게 친구가 된다. 즉, 육체적, 경제적으론 힘이 들지만 정신적으론 안정적이다.
그래서 갑은 힘 있는 갑일 때 을의 입장과 처지를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을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을의 감성을 이해하면 할수록 나중에 을로의 연착륙이 가능하다. 노후를 위해서라도 을이 되어 보라는 권유였다.
이 말씀에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치과의사가 과연 갑에 속하는가? 아마도 대다수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갑일 것이다. 품위 유지비가 꽤 지출되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인정과 존중을 받는가? 아마도 그때그때 다를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 하면 약간의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때로는 ‘사’자 붙은 도둑이라고 매도당하기도 한다.
진료실에서 강자인가? 환자의 통증을 즉시 해결하면 강자의 기분을 느끼겠지만, 예후가 나쁘다면 약자가 되기도 한다. (이때가 가장 을스럽지 않을까?)
따라서 나는 치과의사는 갑이면서도 을인 갑족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갑족보다는 좀 더 유연한 사고를 지닐 수 있고, 겸손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을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넓힐 수 있다. 또 주변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시는 많은 선·후배님이 계시다. 이분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우리 치과의사가 무늬만 갑이 아닌, 진정한 갑일 수 있게 하니까.
그래서 나도 진정한 갑족에 속하길 바라면서 오늘 하루 열심히 겸손되게 살았는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