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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치의학의 혁명 Dental Fluoroscope를 개발하면서/김대연

 

우리의 필요한 것을
우리가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몇 개의 산과 강을 건넜다


현대 치과 방사선학(dental radiology)은 의과 방사선 장비와 같은 x-ray를 사용하고 같은 film을 사용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2차원 image, 3차원 image 부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동영상 부문에서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왜냐하면 치과 방사선 부분에서는 fluoroscope(투시장치)라는 것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우선 Dental fluoroscope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치과 방사선은 현재까지 오직 정지된 image만 획득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시술 도중 의도와는 다르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예를 들어 implant 수술을 할 때 하악 신경관 가까이에 drilling을 할 경우 하악관을 천공하거나, 상악 implant를 식립할 때 상악동 천공 등, 이런 문제가 생긴 후 확인하는 영상을 획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만약 시술하는 모든 과정을 실시간 동영상으로 보면서 한다면 그 위험을 현저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Dental fluoroscope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일상 진료를 하고 물리학, 방사선학, 전자공학, 광학, 전자 광학 등 밤에 애들 재우고 마누라 재우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최고로 열심히 공부했다. 정말 인터넷으로 원자폭탄도 만들 수 있다더니 참 많은 분야를 인터넷으로 배울 수 있었다.


국내에서 개발 가능한 것은 국내에서 개발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기술이 미치지 못한 전자 광학(Electroptics), 광학(Optics)은 외국에서 개발했다. 즉 내가 개발 하고자 하는 부품중 한 가지는 군사 부품이다. 그래서 EUC라는 확인서도 필요하고, 각국의 국방부의 승인도 있어야 하고, 일부는 몰래 스위스로 돈을 송금하는 조건으로 받기도 하고, 사기도 당하고, 6000달러 주고 산 부품이 규격이 틀려서 포장을 뜯은 후 십 분 만에 폐기 처분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미쳤나? 도대체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끝이 보이지 않는 일에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심한 회의를 가진 적도 있었다. 그래서 다 팽개치고 병원 일에만 전념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또 병이 도졌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하면 완성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끝을 알 수가 없는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어디가 끝인 줄 알 수도 없었다. 2년을 싸운 후 겨우 fluoroscope센서의 끝을 보았다. 세계 최초의 개발이었다.
센서를 개발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지금부터 시작임을 일이 다 끝난 후에야 알았다. 만약 센서개발 후 아직도 이렇게 많은 과정이 남은 것을 알았더라면 절대로, 결단코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무식(?)해서 용감했다.


이제 이 제품의 시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금년 12월 안에는 제품으로 출시될 것이다. 연구개발 기간만 4년이었다. 엄청난 개발비와 적은 인력으로 세계최초의 치과용 치료장비를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도전한 것이었다.
이제는 다 되었겠지 하고 생각한지 여러 번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4년 동안 정열과 치과의사인 동업자 정신으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우리가 만들겠다는 신념에서 몇 개의 산을 넘고, 몇 개의 강을 건넜다.


벌써 예약 주문도 꽤 많다. 나를 믿고 우리 제품을 선택해 준 많은 소비자와 주주들, 그리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동생의 일이라고 도와준 형님, 그리고 병원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할 때 싫은 내색도 하지 않은 아내, 아빠가 돈을 못 번다고 용돈을 줄이는 우리 아이들, 나를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가시는 우리 어머니, 그들 모두에게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감사를 드린다.
어찌 되었던 이제 200년 치의학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치과의사는 경험을 가진 같은 동료를 존경하고, 그분의 지식을 공유하고자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였다. 그리고 지난 200년의 치의학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매이는, 많은 선구자적 치과의사에 의해, 비록 더디기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