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를 끌면서 완주
그래도 부끄럼움을 잊은 채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려
국제학회(EAO)에 참석 및 연구발표 차 뮌헨에 갔다가 9월 25일 이봉주선수 등이 뛴 베를린마라톤에 참가하였다. 어린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손기정선수와 히틀러치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이야기이기에, 나도 언젠가 한 번 뛰어보고자 소원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봄 어느 화창한날 50 유로를 결제, 인터넷으로 등록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둔재, 매사 열심히 임하기는 한다지만 남들보다 더 허덕거리며 바쁘게 지내는지라, 따로 달리기를 연습할 시간이 좀체 나지를 않았다.
어느 일요일 여름날 아침식사를 마친 뒤, 독하게 마음을 다잡고 집을 나가서 한강변을 달렸는데, 달린지 약 2km정도는 되었을까 갑자기 눈꺼풀이 무겁더니 졸음이 쏟아져서 가까이에 있는 청담공원으로 기어 올라갔고, 그대로 나무벤치에 길게 드러누워 곤하게 잠들고 말았다. 이후 도무지 뛰는 것은 무리다 싶어 자전거를 가끔 타기도 했다.
대강 학회일정을 소화하고 나서, 24일 베를린으로 가는 고속철 ICE 안에서,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 Lufthansa 탑승 시부터 종류별로 마셔대기 시작한 독일 정통맥주가 뮌헨 Octoberfest에서는 그 절정에 달했었는데, 아침마다 식 전에 밖에 나가서 조금씩 몸이나 풀어둘걸, 술은 마시지 않았어야 했었어, 경기를 마친 뒤에 실컷 마실 수도 있었잖아. 그래, 차라리 우아하게 대처하기로 하자. 3Km 정도만 뛰고 사진이나 몇 장을 근사하게 찍고 그늘에서 좀 쉬다가 완주한 사람들에게 축하나 해주는 것이지 뭐. 축제를 나름대로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아침 8시를 조금 넘자 출발지점에는 세계 각 지역으로부터 모여든 여러 종류의 인간들로 넘쳐났고, 하늘은 취재 헬기와 경비행기로 시끄럽다. 정각 9시에 맨 앞 조의 프로선수그룹이 먼저 출발하였고, 우리가 출발선을 통과한 시각은 약 9시 20분경이었다.
도로 양쪽으로는 시민들의 환호와 종류별 악대들의 조직적인 응원이 한껏 분위기를 띄운다.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하자 땀이 마구 쏟아졌는데, 5km지점부터는 몸이 풀리는 듯, 발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고 여러 사람이 걱정해 주었던 심장은 별 무리 없이 제 할일을 무난히 해내고 있었다. 어라, 10km이잖아, 목표치 초과달성이야, 천천히 뛰는 속도를 늦추면서 적당히 낙오하려고 주위를 살피며 걷기를 시작했다. 밝게 환호를 보내는 저 군중사이로 이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다시 뛰기를 계속하여 마침내 중간지점을 지나게 된 것은 전부 젊은 그녀 탓이다. “정말 잘 달리시네요. 저는 저 뒤에 오시는 줄만 알았어요. 야, 대단하시네요. 더 달려보시지요, 아마 괜찮을 것 같은데요.” 욕심이 눈앞을 가리면 제 몸 상하는 줄도 모르는 법이다. 30km지점이었나, 진행요원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탈진해 주저앉은 그녀를 앰블런스에 싣고 가버렸다.
아이고, 무릎이 본격적으로 아프고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진다. 포기란 있을 수 없고, 37km지점부터 달리는 흉내를 낼 수도 없으니 숫제 걷기로 결정했다. 관중들이야 어떻게 보든 더 이상 상관없다, 이대로라도 골인 지점까지는 가야겠다.
약 5시간 20분간의 천신만고 끝에 완주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손상 입은 나의 무릎은 회복기간이 앞으로 약 6개월 정도 필요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후 독일에서의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는데, 지하철대신 택시로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아까운 외화를 지출해서 좀 더 손해를 보고 말았다.
정작 기대했던 집 식구들로부터는, 칭찬은커녕 무식하고 미련하다는 소리만 잔뜩 듣게 되었고, 언제나 걷기를 좋아하고 활달하고 가볍던 내 발걸음이, 이제는 두 다리를 조금씩 끌면서 조심조심 계단을 오르내린다. 유난히 튼튼하여 안정감 넘치던 서있는 자세가 어느 사이 퍽 겸손해 지는 것 인가싶더니, 평소에 즐기는 산행도 금지되고 말았다.
베를린에는 마라톤경기 이외에도 인라인 스케이팅, 자전거경기, 경보대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