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포시 미소 지을 수 있는
해피엔딩의 인생 연극을 위해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또 한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이가 그리 젊지만은 않구나 하는 조금은 서운한 생각. 낙엽지는 낭만과 겨울의 월백설백천지백 어쩌구 하는 것이 성숙한 느낌이 드는 반면 왠지 싸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나의 마음.
물론 연세가 있으시고 병으로 온 심신이 멍들어 계시지만 아직 부모님께서 살아계시고 나야 아직도 오십이 되려면 또 다른 많은 나날이 제법 흘러야 하는 고로 아직 새파랗게 젊다면 한 없이 젊은 나이기에 세상의 흐름을, 낙엽이 떨어지고 바람에 이리 저리 허둥댐을 정색을 하고 봐야 할 나이는 아니지.
보릿고개를 운운하면서 세월을 보낸 바로 다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시기에 태어났다. 집안 일에 큰 보탬까지는 아니지만 농삿일로 쟁기질 빼고는 다 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해대는 나는 부지런한 부모님의 덕으로 시골에서 한 집안에 의사가 둘이나 났다는 칭찬을 듣는 집안이었다.
허구한 날 남들은 죄다 고삿길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나게 노는데 우리 형제들은 쉬는 법이 별로 없었다. 학교가 파하면 집안 일로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했고, 공부는 저녁밥을 먹고 나서야 시작이다.
이러한 전적이 컨트리보이로 나를 색칠하여 지금도 비만 오면 농사짓는 사람을 기준하여 도움이 되는해가 되는가를 논하며 한가한 들길로 드라이브라도 할라치면 부지런한 농부와 그렇지 못한 농부를 가르기가 본능이다.
그런 시골뜨기가 어엿한 치과의사가 되어 앉아 ‘에헴’하며 진료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입안 농사꾼으로 익숙해 있다. 벌써 십년도 더 되었지만 미국을 공부한답시고 다녀왔고, 최근에는 치과의 파견원장(?)으로 중국에서도 진료를 해보고 왔다. 나이가 많은 탓에 족보에 오를만한 대표원장자리도 앉아보았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림을 취미로 한답시고 흉내를 낸 적이 있어 이에 연결시켜 이십여 년을 사진촬영을 취미로 하다가 최근에야 제정신으로 좀 돌아왔다. 천하에 불효자식이 되었다가 이제 다시 시작하는 늦은 신혼이다.
이제야 미래를 슬금슬금 준비해야할 때라는 것을 소스라치게 느꼈고 남들 다 여유 있게 호기를 부릴 때 나는 시작이라는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이제 참회록을 쓰기 시작할 때다. 일년에 얼마씩을 벌어야 계획한대로 정년퇴임을 하면 아플 때 병원에 가고 가족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지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도 불혹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것이 그 얇디 얇은 귀가 이젠 도통 꽉 막혀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좀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아니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나를 위해 이세상이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나로 하여 행복감을 줄 수 없다면 나로 하여금 불행을 전파해서는 안 된다. 좀 더 내 주위를 위해 아니 나 자신을 위해 본보기가 되어 신나게 살아야 한다.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가볍게 언행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 자신을 명품의 브랜드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머리가 여자처럼 긴 이상한 원장이라는 소리만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주제넘게 나서는 꼴불견이 되지 말아야 한다. 좀 더 겸손하게, 때로는 좀 더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힘든 확률 속에 태어난 나는 내가 있건 없건 세상은 잘 돌겠지만 열심히 살아볼 일이다. 그래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포시 미소 지을 수 있는 해피엔딩의 연극을 마무리해야 한다. 먼 훗날에.
전 석 열
·84년 경희치대 졸
·대전예치과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