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목록에
‘장애인 구강건강’은
계속 들어가 있을 것이다
“동명이인에게 잘 못 전화하신 것 아니에요?"
내가 맨 처음 원고청탁(?)을 받고 전화한 기자께 했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치과대학 졸업 후 정신 없다는 보철과 수련을 마치고, 공중보건의로서 3년간 180도 달라진 생활을 하고 나서는 곧바로 올해 5월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출내기 치과의사에게 세상에 어느 누가 글을 써달라는 말을 하겠는가? 오랜 기간 환자를 봐오면서 느꼈을 만한 철학이 있을 턱이 없고, 다른 선생님들이 경험 못해봤을 만한 특이한 경험이 있을리도 만무하며, 더군다나 글솜씨 말솜씨 없기로 소문난 내가 아닌가….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니 꼭 글을 잘 쓰는 사람만 글을 쓰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7년간 각각 다른 치과의사의 위치를 거치면서 나의 치과의사로서의 꿈이 어떻게 변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가지는 생각이겠지만, 나 또한 졸업 당시에는 치의학 발전에 이바지 하고 국민의 구강건강을 향상시켜야 하겠다는 포부를 가졌었다.
하지만 전공의 시절, 나의 꿈은 곧바로 냉동실에 들어갔고 여유롭다는 공보의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것은 냉동보관중이었다.
내가 시골 보건지소에서 전공을 살려서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료보철 정도인데,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기껏 해준 것은 의치의 수리 정도… 현실과 이상은 역시 괴리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나름대로 학생 때부터 의료봉사를 열심히 하던 나의 사고체계를 흔드는 사건이 있었으니, 치과인들만의 힘으로 장애인 재단법인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그 것 이었다. 특별히 장애인 구강위생에 관심이 없던 나에게는 여유 있을 때 그 일을 열심히 도와주는 것이 면죄부와도 같았다. 바쁜 개원의 선생님들은 기부금을 내시고, 교수님들은 학문적으로 도와주시고, 나 같은 공보의는 몸으로 때우고….
그렇게 장애인의 치과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수많은 특수학교의 장애인들을 검진해보고 보건교사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이건 관심 정도가 아니라 치과의사 및 관련종사자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도 일이 될까 말까 한 상황인 것이었다. 결국 몸으로 대충 때우려던 나의 계획은 수정이 되었고 몸뿐 아니라 돈과 머리(?)로도 때우게 되었다. 다행히 재단은 ‘스마일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제 궤도에 올랐고(아직은 홍보가 부족하지만) 나는 뿌듯한 마음을 안고 공보의를 마치게 되었다.
그럼 나의 꿈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은 바빠서 전공의 때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냉동실은 아니고 냉장실쯤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장애인치과학회도 설립되었고, 장애인치과병원도 개원하는 등 나의 노력이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어 열매를 맺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장애인에 관련된 일을 직접 안 하더라도 나의 꿈 목록에 ‘장애인의 구강건강"은 앞으로 계속 들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꿈은 어떻게 되었고 어떻게 될 것인가? 김치냉장고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나는 ‘치과의사로서의 꿈"이라면 치과의사로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심히 하면 그것이 꿈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이 아닐까… 라고 답을 해본다. 현실타협적이라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나의 꿈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외도(?)를 꿈꿀 것이다. 그래야 나의 꿈도 풍부해지고 다음에 또 글을 쓸 기회가 생겼을 때 쓸 거리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안 진 수
·99년 단국치대 졸
·현)고대안산병원 보철과 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