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른손과 왼손을
화해시켜 맞잡고
그 손을 풀어서
옆 사람과 잡아 보자
고등학교 손 데생시간이었다. 나는 비대칭으로 일그러진 별로 자연스럽지 못한 손을 고생스럽게 완성하여 선생님께로 가져갔다. 못내 평가가 두려웠던 나는 변명 삼아 “선생님, 원래 제 손이 예쁘지 못해요." 힐끔 내 손을 바라보신 선생님께선 선명하게 C라고 수첩에 적으셨다. 어찌된 일인지 삼차원의 사물을 도화지에 옮겨 놓는 일에서 시각, 두뇌의 분석, 그리고 운동기관인 손은 철저히 삼박자를 놓치면서 엇박으로 기존의 시도와는 다른 결과물들을 남겨 놓곤 했다. 나는 쳐진 미술실기 점수를 그림이야기를 통해 만회해야만 했다. 봄 느낌은 옥상에서 바라본 교동의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에 내려앉는 햇살의 산란을 옅고 진한 보라색으로 그림으로써, 가을 풍경 그리기에는 경기전 고목을 훑고 지나는 바람의 길을 낙엽을 통해 그려 넣음으로써.
고1때 가족전체가 채혈을 하러 병원에 갔을 때이다. 단체 예방접종은 매일 첫번째로 하여서 마음의 시름을 일찌감치 덜었던 내가 그날은 암적색 피를 뽑는 주사기를 보는 순간 언니들 뒤로 숨고 만 것이다. 언니들 다 하고, 내 차례, 얼른 끝내고 아침밥 먹으러 가자는 말을 뒤로 하며, 내 팔에 고무줄이 감기는데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눈을 떴을 땐 앞으로 코를 박고 쓰러진 상태였다. 그날 내 피를 뽑으려던 병리사 얼굴은 완전 하얗게 질렸고, 내 몸엔 바늘 한번 들이대지 못하고 나를 돌려보냈다. 피냄새, 피색깔이 교감신경을 과도하게 긴장시켰고, 내몸은 의식 잃음이라는 교묘한 수법으로 이 스트레스 상황을 비켜가려 했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흘린 코피만 보고도 심박수가 빨라지고, 메스꺼운 어지럼증을 느껴야 하는 조건반사를 보이곤 했다.
고3 학력고사 끝나고 뒤숭숭한 날들 중에 하룻밤 꿈이 있었다. 눈부시게 하얀 셔츠를 입은 어떤 카리스마 가득한 따뜻한 눈빛이 계단으로 손을 잡아 끄는데 그의 셔츠 사이로 선홍색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카리스마 가득한 따뜻한 눈빛은 나를 데리고 높은 데로 가더니 도시를 보여주신다. 내가 늘 다니던 거리엔 파리한 얼굴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피를 보고도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음에 놀랐다. 그 따뜻한 눈빛이 내게 무수한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꿈 이후로 나는 나를 키우신 내 아버지의 희망사항에 동의하며 치과대학에 원서를 쑤욱 내밀었다.
학교를 다닐 땐 아주 소수를 제외하곤 누구나 한번쯤 들었을 이야기들을 나는 참으로 무수히 들으면서 다녀야 했다. “도장을 팠군, 아예." “이걸 손으로 깎았냐, 발로 깎았냐…."
마음이 무너지는 소린데 고등학교 미술시간처럼 입이나 개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옮겨 놓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 나는 그토록 재주 없음이 훈련되지 않은 손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이로 인해 손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동기가 된 듯싶다.
내가 만난 손들의 기억은 극히 개인적인 경험의 결론이긴 하지만, 손가락이 뭉툭한 손을 가진 사람들의 맘은 유머러스한 경우가 많았고, 가늘고 긴 손의 주인공들은 신경질적이긴 하지만 여지없이 멋지곤 했다. 남편과 연애할 때도 그 길쭉한 손에서 전해지던 섬세함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듯 하다. 약간 하얗게 각질이 인 손의 주인은 지나친 청결주의자였고, 통통한 손가락 주인의 음식맛은 일품이었다. 두툼한 손등의 주인은 어린이다운 천진함을 가졌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적도 있었다. 내가 보아온 손등과 손가락- 그 중엔 혈관이 많이 튀어 나온 앙상한 손이 있었고, 퉁퉁 부어 오른 피곤한 삶을 얘기하던 손이 있었고, 사고로 인해 손가락 마디가 잘려나간 일하는 사람의 상처 입은 손도 있었다. 탁자 밑에 손이 숨어 있는 경우엔 짬짬이 기회를 노려서 그의 손을 확인해야 그 사람에 대한 파악이 되는 것 같다. "저 사람 손은 어떠한가", "그 안에 숨겨져 있을 손에는 어떤 추억이 있을까?"
따뜻했던 손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