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보일러를 놓고
얼마전 전기공사를 해
치과에는 어느 정도 ‘온기’가…
2005년 12월 9일 저녁 9시에 동서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이병태 공동위원장과 신덕재 부위원장(열린치과의사회 회장), 그리고 신호성 위원(대한치과의사협회 기획이사) 이렇게 우리 일행 네 명이 강원도 간성행 시외버스를 타고, 간성에 내려 다시 택시로 20분쯤 달려, 금강산콘도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긴 12월 10일 새벽 1시 30분 경 이었다.
금요일 하루 종일 진료를 하고 버스 출발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저녁도 거르고 좁은 강원도 산길을 굽이굽이 밤길을 달려 온 터라 온몸은 피곤했지만 내일 이제껏 가보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이 사는 곳에 간다는 설렘과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해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북측 출입국사무소를 통과하는 시간이 하루에 오전 8시와 오후 4시 두 차례로 제한이 되어있기 때문에 시간 안에 수속을 마치기 위해 새벽 5시부터 부산하게 움직여야만 한다. 우선 금강산 콘도 지하에 마련된 현대 아산 사무소에서 방북에 필요한 방북증을 발급 받고 세관신고서 등을 작성해서 통일전망대에 있는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7시 30분.
여기서 이병태 박사님은 누구를 부산하게 찾으시는 눈치다. 잠시 후 출입구 사무소 남측 직원으로 보이는 몇 사람들이 와서 인사를 하고 일반 방북사업자와는 달리 진료팀이라고 여러 가지 배려를 해주는 듯 했다. 아마도 이병태 박사님께서 이 남측 CIQ를 통과하시면서 후배들을 위해 안면을 익혀 놓으신 듯하다. 수속을 마치고 다시 현대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북측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해서도 역시 부지런히 북측 너머에 누구인가를 찾았는지 반갑게 손을 흔드신다. 경계선 너머를 보니 말쑥하게 차린 북측 사람이 이쪽을 보고 마주 손을 흔든다. 이어서 금강산 관광지를 관장하는 북측의 고위 공무원이 마중 나온 것이라고 소개를 해주신다. 예전에 관광차 이 곳을 방문했을 때는 처음 보는 북측 군인들이 꽤나 싸늘하고 무섭게 느껴졌었는데 이 사람의 안내로 출입국 사무소를 쉽게 통과하고 나니 북측 군인들도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든다.
현대 금강산사업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8시 30분 북측에서 마중 나온 관리는 이병태 박사님께 가벼운 농담까지 하면서 인민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 계속 채근 대는데, 그 모습이 10년 지기를 만난 듯 무척 친근해 보인다. 관리사업소에서 간단히 서로 인사를 나눈 후에 현대 금강산사업소 측에서 제공한 현대 소나타 승용차를 신호성 이사가 손수 운전해서 금강산 관광단들에게는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온정리 마을로 향했다. 우리가 앞으로 체류하는 동안 이용하게 될 이 차는 ‘정주영 명예회장께서 처음 금강산 관광사업을 할 때 타시던 것’으로 그 후에는 사업단에서 이용하여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차’라는 현대 금강산사업소 측의 설명이다.
마을을 통과하면서 차창 밖으로 스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5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자기 몸보다 더 무거울 듯한 고구마 가마를 등에 지고 가는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 패션과는 관계없이 그저 찬바람을 막기 위한 옷차림, 온기 하나 없이 썰렁해 보이는 건물들, 포장 안된 도로에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길가에 쌓아 놓은 연탄들…한눈에 보아도 시간을 50여년 전으로 돌려 놓은 역사의 현장에 와 있는 느낌이다.
드디어 온정리 인민병원에 도착했다. 역시 온기라고는 없어 보이는 2층짜리 스라브 건물 간판에 인민병원이라고 써 있어서 ‘아 이게 병원이구나’하고 생각했지 전혀 병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습이다. 난방시설과 전등도 전혀 없는 건물인데 2층에 위치한 치과를 들어서니 치과는 생각보다 따뜻하고 밝은 형광등도 달려있었다. 알고 보니 치과진료를 위해서 얼마 전에 현대 아산 측에서 치과에만 연탄보일러를 설치하고 전기공사를 했다는 것이다.
치과에는 이미 10여명의 환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