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허용하는 한
평생 잔을 부딪힐
소중한 내 술친구들
사실 개인의 신변잡기에 관한 글을 쓴 지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가물가물하다. 수련을 마치고 공중보건치의를 앞둔 훈련소 시절 집사람과 주고받던 여러 장의 편지가 가장 최근의 기억인가 보다. 앞만 보고 내달린 짧지 않은 시간 속에, 돌이켜보면 소주 한잔 권할 좋은 친구들이 생긴 것 같다.
소주한잔.
어느 노총각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한잔의 술잔에 얽힌 추억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나 보다. 때로는 냉정하게 한 두잔 기울이고 빠지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소주 한잔을 기폭제로 삼아 부어라 마셔라 대결구도로 삼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소주 한잔을 부딪히며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몇몇 친구들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창동역 1번 출구를 나오다보면 수많은 포장마차들 사이에서 유독 단골삼아 가던 포장마차가 한곳 있다. 쌍둥이네 집이라는 상호처럼 주인아주머니 슬하에 쌍둥이가 있다는 그 곳은 꼼장어 볶음이 꽤 맛있는 곳이다. 집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기상이 안 좋은 날, 기분이 울적한 날, 때론 분개한 날, 갖가지 핑곗거리 속에 끌려 나오듯이 회동을 하는 모교 교정과 기공실장 김선생님. “아 웬일이세요? 피곤해 죽겠는데 아이참." 짜증을 내시지만 이내 숯불에 타는 꼼장어를 뒤집는데 여념이 없다.
한잔의 술과 안주 삼아 오가는 병원얘기, 사는 소식들이 왜 그리도 맛있는지… 소주 한잔 연락을 받으면 항상 귀찮아 하시지만, 은근히 연락을 기다리는 김 선생님은 꼼장어를 나누는 좋은 친구이다.
강남성모병원 교정과 국윤아 교수님과는 3년째 탐구중이다. 밤 10시, 11시에 함께 일을 마치고 나면 소주 한잔하기에 좋은 아지트를 찾는 고민을 시작한다.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는 드럼통, 이상하게 회를 주문해도, 고기를 주문해도, 드럼통처럼 생긴 노천의 테이블에 플라스틱 의자 하나면 뿌듯하다. 왜 그리 하루를 알차게 산 것 같은지, 나누는 소주 한잔이 고급 술을 압도한다. 때론 모성서 선생, 이근혜 선생 같은 술친구가 함께 하기도 하고, 때론 수련의 선생들을 떼거지로 몰고와 억지로 분위기를 강요하지만, 그래도 즐겁다. 지금은 탐구하는 친구가 한명 늘었다. 임상강사 강윤구선생, 탐구의 끝은 어딜까?
후배 오재권 선생 부부는 커플이다. 퓨전스타일의 외대앞 술집은 다양한 주종의 술과 빽빽하게 가득찬 안주메뉴를 자랑한다. 두 부부가 술잔을 기울일 때면 예외없이 학창시절 하숙생활을 함께 할 때 겪었던 후배로서의 애환과 투정이 가득하다. “아, 혀엉, 왜 꼭 형수(참고로 집사람은 오 선생의 후배이다)랑 연애할 때 다투면 나를 불렀어? 기껏 불러서 술자리에서 화해하게 해놓으면 그때부터는 나는 찬밥 신세라니까… 에이참 너무한거 아니야?" 하숙시절 후배에게 행했던 장난기 가득했던 나의 행동에 대한 투정은 평생 갈 것 같다.
집사람은 여전히 가장 자주 모임을 갖는 술친구이다. 몸이 허용하는 한 평생 잔을 부딪힐 친구이다.
어느덧 의정부 성모병원을 들어온 지 만 3년이 되어간다. 공직생활을 하면 할수록 가장 친한 친구는 집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다투고 서운해 하고, 애들 좀 더 신경쓰라는 핀잔을 받지만,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 텔레비전앞에서 나누는 술 한잔은 서로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소리가 잘 안나서 아주 좋아하는 대용량 맥주 페트병은 아이들은 둔 부부에게 가장 적당한 주류가 아닐까? 힘들지만 힘든 내색 않고 일 벌리기 좋아하는 남편 뒤치다꺼리하랴, 어린 남매 사랑주랴, 그리고 그동안 늦춰왔던 늦은 대학원 과정으로 고생하는 집사람에게 항상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소주 한잔 나누는 좋은 친구, 부족한 내겐 더할 수 없이 소중한 보물들이다.
김 성 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치과교정과 전임강사